수줍고 아기자기한 공연 한편을 보고 왔습니다.

수줍고 아기자기한 공연 한편을 보고 왔습니다.

저는 비평가들처럼 철두철미한 분석은

흉내도 못 내거니와

단지 공연을 보고 느끼는 대로만

철저히 주관적으로

그냥 극에 취해 쓰려고 합니다.

가끔씩

” 아는 만큼 보이잖아…
뮤지컬 관련된 책도 보고 해야하지 않겠어…? “

하고 주위 분들이 말씀하시면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 하… 글쎄요…
아직은 머리로 보기전에…
마음으로 보고 싶어요…

지금껏 살아오며 보니깐
공부할 수록 제가 자꾸 교만해져가는 거 같아서요… “

충분히 설명 됐으리라 생각하고

소나기가 건네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할까 합니다.

정말 아이러니컬한 상황입니다.

몇년전 물 건너 이팔청춘 남녀의 뜨거운 사랑얘기로

뮤지컬 대상을 휩쓸었던 분이

이제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똑같이 이팔청춘 남녀의 수줍은 사랑얘기를

다시 뮤지컬로 한다니…

일단 그 때와 지금은 어떤 것이 어떤 것들이 다를까요…

아니 정확히 말해 그 공연의 이야기와

소나기의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같고 어떤 것들이 다른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같은 점은

사랑이 있다는 것, 나이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점은?

하하… 너무 많아요… ( __)

똑같은 사랑얘기인데 어쩌면 이렇게 많이 다를까요…?

문화적 차이가

똑같은 사랑얘기인데도

이렇게 많이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네요….

로쥴에 나오는 열여섯살 꼬맹이(?)들의 사랑은

너무 장엄하고 위대했습니다.

하지만,

위장된 죽음으로라도 사랑을 이루고 싶었던

그 욕심에 관한 이야기가

고지식한 예전 우리네 정서로 볼 때는

발랑까진 아이들의 발칙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사랑은 직선적이고 솔직해서 첫눈에 반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들에게는 화려한 파티가 있었고 가면 무도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나기에서는 겉도는 듯한 수줍음만 있습니다.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고

고작 가방 한 번 들어주는 게 전부인 우리 사랑얘기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더 짠~하게..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멋진 사랑고백도 없었어요…

<소나기>에는 조약돌이 있을 뿐입니다.

글쎄요…

제 조카들이 함께 봤다면 한숨 쉬며 봤겠죠…

”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어 ”

하면서요…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만 지나가도

발걸음 하나하나도 갑자기 어색한 동작이 되던

저의 그 시절을 돌이켜보건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로쥴의 죽음이 둘의 사랑을 종결과 함께

위대한 사랑으로의 승화였다면

소나기에서는

죽음이 단지 묘비에 새겨진 글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로쥴 주인공들의 사랑이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같고 거침없는 사랑에
(어찌보면 철없기에 용감했던…)

죽음이 우스워보였다면

소녀와 소년에게 죽음은 절박한 장애 였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건널 수 없는 강이자 두려운 사막과도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로쥴에서는 선택의 문제였지만

<소나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였습니다.

이런 같은 점과 다른 점들을

<소나기>는 잘 살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아 밤을 꼬박새서라도

두개의 작품을 비교하며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그건 나중에 소주 한 잔 기울여서 하고 싶으니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왠지 말을 아껴야 <소나기>에 누를 끼치지 않을 거 같아서요…

처음에는 정말 걱정 많이 했습니다.

혹시 소녀와 소년이 만나는 장면이…

로미오와 쥴리엣이 파티에서 만나는 장면 같으면 어쩌지…

소나기 오는 장면 멋있다던데…

싱잉인더레인 때 같은 느낌이면 어쩌지…

소녀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주려나…?

그 장례식이 웅장하거나 너무 장엄하면 안 될텐데…

하고 말이죠…

ㅎㅎ 물론 기우였습니다.

충분히 절제되어 있고

배우들의 연기들도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그걸 받쳐주기 위한 넘버들도 훌륭했습니다.

로쥴 때나 <소나기> 때나 모두 넘버에는 많이 신경 쓴 거 같습니다.

특히 소나기 내리는 장면에서 원두막에서

소녀가 솔로로 부르는 장면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배우 최성원씨의 연기가 너무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참 소화해내기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소년이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많은 훌륭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모자람도 있었습니다.

무대장치들에서 나는 소리…

1막의 너무 많은 장면전환은 조금 아쉽습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장면전환이 1막을 더 지루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분들에겐

공연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공연을 본다면

주말보다는 평일에 일찍 친한 친구와 1시간 전쯤 도착해서

따뜻한 밀크티나 상큼한 녹차를 한 잔하고

조금 마음을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보시리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최성원씨의 매력을 즐기시라고…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화려한 군무나

멋쟁이 주인공과 조명만을 기다리신다면…

이 공연을 피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브로드웨이의 오버와 들썩이게 하는 즐거움은 없습니다.

게다가 소설을 읽고 난 후

마지막에 소녀의 죽음을 알게된 소년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아마 다음 번에는 좀 건강한 여자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걸요?”

라고 대답할 사람이라면 더더욱 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0-

수줍었던 당신 사랑도 너무 오래전 추억속에 파묻혀 있어

전혀 기억해 낼 수 없을 테니깐요…

이 가을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줍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가볍게 떨리는 섬세함을 느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