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판만 구워드려요.

 

며칠전 지인과 밥을 먹는데 삼겹살 집에서 알바생이 열심히 서빙하길래 팁을 챙겨줬다.

지인은 오마카세나 손이 많이 가는 한정식 집도 아닌데 팁을 따로 챙겨주냐고 놀라며 물었다.

 

ㅎㅎㅎㅎ 저는 대학생 정도의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도움을 주면 꼭 팁을 챙겨줍니다.

제가 아르바이트 할 때도 팁을 많이 받았고

저도 나이 들어서 팁 잘 챙겨주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결심을 했었거든요.

 

 

IMF 끝나고 다양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봤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회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을 꼽는다.

당시에 부산에나 가야 갈 수 있던 회센터가 서울에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개인당 상차림 비용만 내면

수산코너에서 막 잡은 회도 싸게 먹을 수 있고 정육점에서 구입한 신선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식당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여러가지 썰 풀 수 있는 다양한 진기한 경험들도 많이 했고 평생 써 먹을 고기 굽는 스킬도 여기서 연마했다.

야간 근무라 알바비도 꽤 짭짤했는데 내 경우는 알바비 보다 팁을 더 많이 벌었다.

생각해 보면 두달만에 한학기 등록금을 버는 수준이었으니 정말 괜찮았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에 근무를 했었는데 저녁 11시 30분 정도를 넘어가면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시간에는 이제 막 영업을 종료한 음식점, 맥주집 사장님들이 주로 허기를 채우러 왔었다.

그 사장님들은 주로 삼겹살, 목살 등을 먹는데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상차림만 간단히 끝내지 않고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직접 구워줬다.

(당시는 지금처럼 점원이 테이블별로 삼겹살을 구워주는 집들은 정말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첫 판만 구워드려요~

 

고기들을 정렬해 놓고 사사삭 구워드리면 사장님들은 정말 좋아한다.

하루 종일 각종 다양한 손님들에게 여기 저기 치였을 텐데 그 분들도 누군가에게 근사한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았을까?

 

 

굽는 중에는 고기에 손도 못 대게 하다가

“자, 이제 드세요~” 하면 다들 정말 크아~~~ 감탄하면서 너무 좋아해 주셨다.

 

 

“모두들 한 잔씩 쭉 드시고 고기 드세요~”

하면 또 다들 신기하게도 그렇게 내 말을 잘 따라준다.

그리고 손님의 빈 소주잔들을 채워드리면  모두들 ‘학생 정말 대단하다.’ 하면서 5천원씩, 만원씩 팁을 챙겨주신다.

당시에 시간당 알바비가 2,200원 정도였으니 5천원, 만원은 나름 큰 돈이다.

 

 

한 사람이 팁을 주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팁을 주겠다고 아웅다웅한다.

“각자 주셔도 괜찮습니다~” 하고 방긋 웃어드리면,

“그려~ 다 받아” 하시면서 모두 챙겨 주신다. ㅎㅎㅎㅎ

 

 

그렇게 몇개월 그 회센타에서 일했던 경험이 정말 큰 자산이 됐다.

차별화 전략은 1) 고기 종류와 불판별 테크닉 2) 정렬의 아름다움 3) 완벽한 개인화가 그 핵심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고깃집에서 회식할 때도 뭔가 아는 사람들은 한사코 꼭 곰탱이와 한 테이블에 앉고 싶어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은 안다. 같은 고기도 굽는 스킬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플레이팅 잘 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불판에서부터 정성스런 가지런함이 느껴지면 좋다.

 

 

PM이나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담당자랑 같은 테이블에 있으면 버섯, 김치, 콩나물 등 곁들임 메뉴들도 그들 취향에 딱 맞게 굽는다.

나이들수록 어른들은 자신의 취향을 기억하고 취향대로 대접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SI 프로젝트 일을 할 때는 고객사 담당자가 너무 자주 회식자리, 술자리로 불러 정말 애를 먹은 적도 있다.

 

 

이 특기는 날이 갈 수록 더 좋은 생존 무기가 됐다.

고깃집가서 고기 구워줄 때 가족들 만족도도 최상이 된다.

오늘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하다 생각이 들 때는 직원들처럼 테이블 옆에 서서 굽는다.

그래야 완벽한 굽기닉(=고기 굽기 테크닉)을 실행하기 쉽고 불판의 정렬이 매끄러워진다.

물론 친한 고깃집에서만 그렇게 고기를 먹는다. 솔직히 다들 부끄럽다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덕분에 나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기술을 익히면 평생에 도움이 된다.

이제는 ‘특기가 뭐에요?’라고 질문을 받을 나이는 아니지만 누군가 물으면 수줍게 웃으며 ‘고기 굽기가 특기에요’ 하면서 얘기하고 싶다.

무형문화재처럼 누군가에게 전수할만한 대단한 스킬은 아니지만 평생에 써 먹을 만한 스킬이니 매뉴얼을 한 번 작성해 볼까..? 🤣

아이는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자기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평생 기술로 어떤 걸 가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