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장정일입니다.
아주 우연히, 제가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음악동호회에서 선생님이 그리신 <이회창의 아름다운 인생>이란 이후보 홍보용 만화를 보고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열어 보기 전에 <이회창의 아름다운 인생>이란 제목과 이현세라는 이름을 보고, 저는 큭큭 웃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아, 나는 곧 한 세기에 회자될 멋진 풍자만화를 보게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는 민주 시민의 권리이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만화를 보는 순간 저는 왜 1997년 여름이 생각났을까요?
그해 저는 제 자신도 부정하고 싶지 않은, 왜냐하면 작심하고 한국 사회의 얼굴에 낙서를 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무시무시한(?) 포르노 소설을 쓰고 나서 법원이 있는 양재동의 언덕길을 오르내렸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선생님 또한 <천국의 신화>라는 우리나라 만화 사상 가장 걸출한 대작의 한 부분이 문제가 되어 법원의 언덕을 오르내리고 계셨습니다. 예상되로 저의 작품은 저를 구해내지 못하였고, 선생님 또한 유죄를 선고 받아 벌금을 내시게 되었습니다. 이 점, 한번도 뵌바 없으나 그 사건 후로 제가 선생님께 마음 속의 부채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기 적어 놓고 싶습니다. 까닭은 제가 선생님 보다 조금 앞서 검찰의 조사와 재판을 받게 된 까닭으로, 제가 조금이라도 더 분전을 했다면 선생님의 판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표현 수단은 다르나 똑같은 죄목으로 책이 판금되고 당사자들이 검사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을 때, 저의 문인 동료들과 선생님을 지지하는 만화계와 문화계 인사들은 두 사람을 구명하기 위해 서명과 변호의 글을 다투어 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이 참 부러웠습니다. 약간씩 문학관이 틀린 여러 진영에서 유례없이, 동시에 저를 위해 구명에 애써 준 사실에 대해 저는 커다란 긍지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선생님의 경우는 많은 지지자들이 삭발이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옹호와 항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아, 나도 저런 지지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 모습을 텔리비젼으로 보면서 저는 선생님이 그렇게도 부러웠던 것입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다시는 생각 하기 싫으실지도 모르는 그해를 들추어 내는 것은 무척 송구스러운 일입니다만, 대체 저를 위해 서명을 해주고 변호의 글을 써주었던 동료 작가들이나 선생님을 위해 삭발을 했던 문화계 인사들은 대체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기껏 꼴난 저의 소설나부랑이와 선생님의 ‘망가’를 위해? 그 행위들은 일차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고 압수와 구속이라는 비문명적 탄압으로부터 작품과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였지만, 더 넓게 보자면 그분들에게 그 행위는 분명한 정치적 요구고 행동이었습니다. 다시말해 그 행위는 특정하며 구체적인 <내게 거짓말을 해봐>나 <천국의 신화>를 압수로 부터 구하고 이현세와 장정일을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항구적으로 지켜져야할 다양한 의견의 자유와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민주적 사회를 요구하는 정치 행위였던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장선우 감독님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원작 삼아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을때 입니다. 그 논란이 많았던 영화는 국내에 상영되기에 앞서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이 되었고, 제작사의 언론 플레이가 보태지긴 했으나 현지에서의 수상 여부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영화제 동안 화제를 뿌린 것과 달리 아무런 수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 다음날 우연히 읽게 된 <조선일보>의 컬럼은 참 가관이었습니다. 요체는, ‘이런 영화가 수상을 하게 되었다면 한국인은 세계에 낯을 들고 다닐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 국가를 향해 나가는 한국으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천국의 신화>가 수난을 당하고 있을때 가차없이 돌을 던진 세력이 바로 누구이겠습니까? 양재동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선생님의 실존적 산물이자 경제적 권리인 작품을 판금시키고 인신마저 구속하려드는 검찰 권력의 배후(보수주의, 권위주의, 문화적 엘리티즘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선생님에게 1997년의 여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저를 위해 서명해 주셨던 많은 동료 작가들 가운데는 물론 저와는 의견이 다르게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도 계실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까지 그토록 부러워 했던 선생님의 ‘삭발 지지자’ 가운데는 한분도 이회창 지지자가 없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문화 운동가들은 그해 여름보다, 더욱 뜨겁고 맹렬했던 것 아닙니까!
필화나 판금은 창작가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주는 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 고통을 오래 겪었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다른 작가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선생님과 저는 그해의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의 의미에 대해 다른 작가들 보다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아무쪼록 옛날의 상처를 딛고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이 글을 읽는 고클동호회 회원분들 가운데, 이현세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아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가르켜 주시거나, 이 글을 선생님께 전송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