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추억 [연극 : 햄릿]

햄릿의 추억

당신이 햄릿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추억은 어떨까…

성문 기본 영문법에 나오는 “To be or not to be”…?

아니면 다 늙은 멜깁슨이 나오는 헐리웃판 “햄릿”… ?

그것도 아니면 로렌스 올리비에의 秀作 “햄릿”….?

햄릿을 연.극.으로 본 경험이 있을까…?

아니면 원작 희곡이라도…

등장인물들 중에 숨을 거두는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지…

혹시 햄릿이 영국왕자인지 덴마크 왕자인지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수도 없이 영화와 TV물로 만들어졌으나

연극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감동을 살려내지 못 해

그 만큼 많은 졸작들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그러면서도 실제 연극으로 본 사람은 의외로 드문 연극

햄릿…

신나고 재밌고 우리들의 눈과 귀만 자극하다 말아버리는

인스턴스 식품같은 연극이 판치고 있는 요즘에

구수한 된장국 같으면서도 상큼한 레몬에이드 같은

연극 한 편…

바로 그 햄릿이 지금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희단 거리패의 극들은 항상 압도적이다.

관객을 즐겁게도 슬프게도 하고 상처 받게도 하면서

마치 “관객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하는 것 마냥

관객을 손안에 쥐고 흔든다.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슬픈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때는 관객에게 능동적인 감정 대처를

어떤 때는 감정사냥에 나선듯이 수동적인 감정 대처를 요구한다.

햄릿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형으로 된 야외 극장으로 들어선 순간…

커다란 천마총 그림으로 장식된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거지…?’ 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연희단의 멋진 전술과 전략~~!

배우들의 원작에 충실한 대사와 가슴을 후벼파는 몸짓….

그 와중에 슬금슬금 몰래 섞여 나와 원작에 나오는 대사로 착각하게 만드는

연희단만의 특유의 재치있고 감동적인 대사들…

그리고 우리를 더 빠져들게 만드는 숨겨진 음악들과 독특한 무대의상들…

정말 문화게릴라라 불릴 만한 이윤택 선생과 그의 일당들의 멋진 솜씨다.

원작의 답답한 햄릿은 항상 주저하고 고민하지만

연희단의 햄릿은 고민과 주저에 머물러 있지 않다.

충격으로 미친 듯 행동하는 장면도 조금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 대사에 오래 발목 잡혀 있지 않다.

클라우디우스와 어머니에게 보여 줄 연극을 준비하는

햄릿의 활기와 생명력은

마치 연희단 자신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연극을 공연하고 햄릿이 호레이쇼를 부르며

왕의 표정을 보았느냐고 연극이 양심을 일깨운다는 대사들을 읊으면서

극중 배우들과 호레이쇼, 햄릿이 “연극만세”!를 삼창하는 설정 등이

바로 연희단 배우들의 자신감과

연극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점이라 하겠다.

연희단 공연에는 묘한 공통점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淨化이다.

태풍(Tempest)에서는 태풍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고…

햄릿에서는 포틴브라스의 행동을 빌어 보여준다.
(물론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잠들 수 없다]에서도 깨끗이 씻기는 장면이 나온다.)

무대 전체를 커다란 하얀 천으로 덮어 씻어내고

그 안에서 깨.끗.한. 알몸으로 천천히 걸어나오는 햄릿…

그리고 그는 계단을 이용해 하늘로 천천히 걸어간다.

태풍에서는 단지 무대장치를 이용 태풍이 부는 장면으로 보여주었다면

햄릿에서는 하얀 천과 그리고 알몸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으로

淨化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게 바로

곪을대로 곪아버린 이 사회의 현실에 대한

마지막으로 남은 사회적, 문화적 양심으로서 연극인의 역할…

淨化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바로 역시 마무리에 있다.

비극을 비극으로 마치지 않고…

연극이 끝나고 보여주는 경쾌한 음악과 배우들의 재밌는 춤…

그리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성…

” 너무 우울해 하지 말고 가세요… ” 하는 연희단의 배려일까…

아니면 비극과 희극, 괴로움과 즐거움….

이렇게 구비구비 반복되는 일상이 인생이라는 메세지를 전해 주려는

연출자의 숨은 의도일까…

우리는 그렇게 비극 속의 카타르시스를 한 번 더 승.화.시키고 나서야

극장문을 나설 수 있었다.

게릴라들의 작전이라 그런가…

아니면 격정적인 연극이라 힘들어서 그런걸까…?

공연기간이 짧아서 많이 아쉽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행복할 수 있도록

긴 재공연을 기획해보는 건 어떨까…?

배우들의 땀만큼 소중한 연극…

좋은 공연으로 우리를 씻어주는

연희단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