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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씻는 물과 마실 물이 따로 생기나요?

    인도의 어떤 대학에 잠시 교환교수로
    머물렀던 분으로 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수는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뉴델리 외곽지역에 숙소를 마련했는데,

    인도의 물가가 워낙 싸서
    한국의 하숙비 정도만 있으면
    집안에 하인 몇 사람을 거느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인 한 명과
    하녀 한 명을 두었는데
    모두 비천한 계급 출신이었다.

    하인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하녀가 커다란 물그릇을 갖다주었다.

    그는 하녀가 가져온 물그릇에 손을 씻었다.
    그러자 하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이 물은 마시라고 가져온 건데요."

    그는 민망한 표정을 짓고 나서
    새로 물을 가져 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마셨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하녀가 똑같은 물을 떠왔다.

    그는 물그릇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그 물은 발을 씻으라고 가져온 건데요"

    화들짝 놀란 그는
    입안에 담긴 물을 뱉어내고
    그 물에 발을 씻었다.

    그 날 이후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녀는 어김없이 물그릇을 가져왔다.

    하지만 똑같은 그릇에 물을 떠오니
    어떤 물이 마실 물이고 어떤 물이
    씻는 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참다 못한 그가 하녀를 꾸짖었다.

    "아무리 배우지 못했기로서니
    발 씻는 물그릇과 마실 물을 담는
    그릇조차 구별하지 못한단 말이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린 하녀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선생님...,물이 생길 때부터
    발씻는 물과 마실 물이 따로 생기나요?

    저는 선생님이
    목이 말라 보였을 땐
    마실 물을 가져오고,

    발에 땀이 찼을 때는
    발 씻을 물을 가져왔을 뿐이에요"

    하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커다란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물은,
    그대로 물인 것이다.

    날 때부터 먹을 물과 씻을 물이
    따로 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한 마디를 토해냈다.

    "아, 이것이 깨달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