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광고대행사 사치앤드사치(Saatchi & Saatchi)의 CEO 케빈 로버츠(Kebin Roberts; 1949~)는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 ‘브랜드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브랜드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던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리야?’ 할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해서 인터넷 마케팅 시대가 열리면서 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난날의 브랜드는 제품 생산자가 만든 것이었다면, 그때부터의 브랜드는 단 한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만드는 것이 됐음을 의미한다. 케빈 로버츠는 이렇게 새로운 브랜드가 창출되는 현상을 ‘러브마크(Lovemark)’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일단 러브마크를 찍은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이성을 넘어선 것(Loyalty beyond reason)’이라고 간파하고 소비자가 강한 감성적 애착을 느끼는 브랜드, 변함없는 고객 충성도를 누리며 장수하는 브랜드들의 성공 뒤에 숨은 비결은 ‘사랑(love)’이라는 답을 찾아낸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아디다스를 사랑한다’, ‘프라다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고객은 자신이 사랑하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이성과 가격을 뛰어넘는 충성도를 보입니다.”
‘러브마크’개념 도입
어떤 제품이 제대로 소비자의 사랑과 애정을 독차지하기만 하면 소비자는 세상 끝까지라도 달려가 반드시 그 제품을 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에서의 ‘힘’이 제조사, 소매업체에서 소비자로 넘어간 현시점에서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랑’ 뿐이라며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러브마크의 의미는 명백하다.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감성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사람들을 숫자로 취급해왔다. 목표치나 통계의 대상으로 여겨 왔던 것이다.”
그는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비즈니스 세계로 뛰어든 자수성가 광고인이다. 말단 사원으로부터 시작한 그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신비감·감각·친밀감
1987년 펩시콜라 사장으로 임명된 그는 짧은 취임 연설을 마친 후, 갑자기 기관총을 집어 들고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코카콜라 자판기를 난사했다.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다음날 이 깜짝 이벤트는 최고의 화젯거리가 됐고, 결국 캐나다시장 부동의 1위였던 코카콜라를 따라 잡았다.
이후 1997년 그는 적자에 내몰렸던 사치앤드사치의 CEO를 맡았고, 이 회사 또한 부활시켰다. 케빈 로버츠는 러브마크의 필수조건으로 신비감, 감각, 친밀감을 꼽으면서,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할 때, ‘이성을 넘어선 충성심’을 가진 무한한 고객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성공한 러브마크 기업으로 스타벅스, 애플, 아마존, 레고, 리바이스, 맥도날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 할리데이비슨 등을 꼽았다. 한 달에 평균 스무 편의 영화를 보고, 서른 권의 잡지를 읽고, 젊은이들이 찾는 클럽 주변을 서성이며,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극장을 수시로 찾는 괴짜 CEO 케빈 로버츠는 82개국에서 7000명이 넘는 창의적인 직원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내게 한국의 러브마크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다. 나를 흥분시키고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며 “한국 기업은 당시 국가대표팀과 같은 러브마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