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14
철이: 제대를 하고 나니까 할 일이 너무 많네요. 무슨 할일이요? 놀아야죠. 못받던
비디오 봐야죠. 만화책 봐야죠.
친구들이 술 사준다고 그러죠. 아버지가 고기 사줬죠. 참 저번에 일교과 덩치하고
쌈났던 선배있죠. 결혼했더군요. 그때 여자선배랑… 좀 빠르지 않나? 하하.
사고쳤다는 군요. 무슨 사고를 쳤을까?
일주일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새학기가 며칠밖에는 남지를 않았습니다.
오늘은 학교를 갔지요. 학교 분위기 파악을 해야하니까요. 수강신청을 무얼할까도
알아봐야 하고, 혹시 그녀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캠퍼스 모양새는 변하지
않았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학교에서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추운 날씨에 따사한 햇살이 기분을 맑게 합니다.
이 캠퍼스에서 언젠가는 그녀를 보게 되겠지요.
훗훗. 또 버스가 늦네요. 내가 타는 버스는 아직도 그 시간대로 운행을
하나봅니다. 꽃집과 레코드방… 분위기 있읍니다. 꽃집에서 꽃한송이를 사서
새어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누구를 기다려 보는것도 낭만이 있을거 같습니다.
새어나오는 음악이 참 좋네요. 부대내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스피커폰으로
최신유행가만 들었습니다. 이렇게 맑고 경쾌한 음악이 좋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내 맘을 새롭게 합니다. 제목도 모르지만 하나 사볼까요?
어… 잘못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왜 저기 있습니까? 도로 나갈까요?
민이: 오늘이 여기 아르바이트 마지막날입니다. 좀더 일찍 그만 두려고 했지만
주인 아저씨가 붙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며칠 더 했습니다. 오늘 급료를
받겠네요. 오후가 한가롭습니다. 바깥이 아직 춥겠지만 안에서 보는 밖은 햇빛으로
인해 마냥 따뜻하게만 느껴집니다. 집에서 들고온 테프나 틀어 볼까요? 크린베리스
1.2집 편집하여 다시 녹음한겁니다.
어… 그가 들어왔습니다. 그가 여기는 왠일일까요? 또 나를 보더니 머쓱해
합니다. 나가버리기만 해… 나갈려고 합니다. 하. 바봅니까? 아니면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겁니까?
뭐에요?
어머. 내가 왜 짜증스런 어투로 그에게 말을 건넸을까요? 잘한거네요. 그가
나갈려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바..밖에 나오는 음악 뭐에요? 그거 하나 주세요.
그의 모습은 군대가기전의 모습과 다를게 없군요. 단지 조금 까매진 피부와 짧은
머리만 그때와 다릅니다.
계철씨? 고개좀 들고 떨지 말고 말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저또한 그가 내
가까이로 오니 머뭇거려 지네요.
뭐더라? 잠시만요.
못찾겠습니다. 어딨더라? 호호 나도 좀 떨고 있네요.
어. 없으면 놔두세요. 그냥 다른거 살께요.
잠깐만요.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거에요. 왜이리 안 보이는거야?
그냥 이거나 하나 살께요.
그가 손에 들은건 나조차도 생소한 이름의 시디였습니다. 그는 저런쪽의 음악을
좋아하나보다. 기억해 놓아야지… ‘메틀리 크루?’
그가 계산을 하고 별말 없이 나갈려고 합니다. 밖의 스피커에서 들리는 노래를
듣고 그가 이곳으로 들어온게 틀림없습니다.
저기요. 크린베리스 좋아하세요?
나의 이말에 그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예? 호호 그의 눈망울이 귀얍습니다.
좋아하시면 이거라도 가지고 가실래요?
뭐 내가 들고온 테잎이니 그에게 주어도 됩니다.
아. 예… 얼마에요?
호호 이건 제가 가져온 거에요. 그냥 가져 가세요. 듣고 싫증나면 주세요.
철이: 몸만 들어왔다 아무말 없이 아무것도 안사고 그냥 나갈려니 그녀가 황당한가
봅니다. 그래서 밖에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은거 하나 주라고 그랬죠. 수민씨? 조금
떨고 있나요? 쩝. 하기야 내가 편지보낸걸 그녀는 알겁니다. 게다가 군대에서 내가
구라까지 친걸 그녀가 알고 있죠. 빨랑 나가야 하는데… 그녀가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는거 같기는 한데 상당히 서툽니다. 못찾겠으면 그만 두세요. 딴거
사면 되니깐요. 그냥 바로 앞에 있는 시디 아무꺼나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이거하나 주세요. 계산을 하고 돌아 섰습니다. 좀 아쉽네요. 이렇게 마주치기도
쉽지는 않은데… 외국은 잘 나갔다 오셨어요? 그래 이말이라도 한마디 물어봐야
겠습니다. 쉼호흡 한번만 하고 돌아서자. 하하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쯤…
제대는 언제 하셨어요?
그녀가 나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짝사랑 해본 사람들은 알겁니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할때의 그 느낌…
일주일정도 됐습니다.
예… 이번학기에 복학하시죠?
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세요?
예… 오늘이 마지막날인데…
예… 학교 아직 다니시죠?
예… 그럼요.
더 얘기 하고 싶었지만 좀 어색하기도 하고 손님이 들어와서 나와야 했습니다.
내딴에는 엄청나게 오랜시간 그녀와 대화의 시간을 가진거 같습니다. 그녀가 준
테이프, 잘 듣겠습니다.
버스정류장 앞 꽃집 그리고 그옆에 내가 우연히 있었으면 하고 기대했던 음반점..
그속에서 그녀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내가 산 시디는 우리형을 주었지요. 대학원 들어간 형아가 그 음을 듣더니 반
미쳐버렸습니다. 우악! 앗싸! 상관없습니다. 그거 듣고 형아가 미치던지 발광을
부리던지 난 상관않고 그녀가 준 테프를 내방에서 이어폰으로 들으면 되니깐요.
민이: 호호 그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가져보게 될줄이야. 이제는 학교에서
만나도 아는척을 할 수 있겠죠?
많이도 기대를 하고 그렸던 그를 우연히 생각없이 만나서 기분이 좀 그렇지만
이제는 인연이 맺으질거란 확신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뭔가 빠진게… 아
맞다. 그에게 이 기회에 내 이름을 밝힌 편지를 줘 버릴건데 그랬습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오늘 급료도 받는데 그걸 주었더라면 완전한 만남을 가질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철이: 많은 기대를 가지고 도서관을 갔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군요. 아직
방학이라 이시간에 내자리에 누가 앉지는 않았겠지요? 그렇죠.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웠던 내자리… 그리고 더 그리웠던 그녀의 자리… 다 비어 있군요.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녀가 오늘 도서관을 나와 이자리에 앉을까요? 그
시간이 빨리 오도록 잠이나 자야 겠읍니다. 이미지 버리는데… 뭐 더 버릴 내
이미지가 남아 있겠습니까? 그냥 그녀의 모습만 볼 수 있으면 되지요. 뭐.
민이: 혹시나 하는 기대로 도서관을 갔습니다. 이제 아침햇살에 어스럼이 걷혀가고
있습니다.
호호. 낯익은 그리움이 담긴 모습. 책도 안펴고 그대로 머리를 박고 자는 그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옆자리는 비어 있군요. 꼭 나를 기다린것처럼 말입니다.
앉을까요? 다른 자리도 비어있는데 좀 앉기가 그렇습니다만 예전에도 저자리는
제자리였습니다. 앉아서 그를 바라봤습니다. 언제쯤 일어날까요? 왜 나도 졸음이
오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