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는 철원에서 군생활을 했다…
그 곳은 논산과 같이 분지 지형이라
여름이면 무지 덥고 겨울에는 무지 추운
군 생활 하기엔 딱 안성맞춤인 정말 **스런 곳이다.
여름에는 땀띠 때문에… 겨울에는 동상 때문에…
다들 고생을 한다.
동상은 그 증세가 참 가지가지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은 기왕증이라는 후유증이 남는 것이다.
기왕증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전에 걸렸던 병. 과거의 병력(病歷). 이라 나오지만
군대에서는 한번이라도 동상에 걸려봤던 사람을 가리켜
기왕증 환자라 부른다…
기왕증에 걸린 사람들에겐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바람이 불면
동상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동상과 유사한 증세가 찾아온다…
보통은 귀가 가렵고 딱딱해지고…
얼굴이 후끈거리고 나중에는 발가락 마디마디가 쑤시는 현상을 겪게된다…
참 이상한 것은 그리 춥지도 않다고 느끼는데
내 몸 스스로 알아서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Es도 전역 후 몇년 동안은 기왕증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었다…
기왕증을 앓아본 사람들의 하나된 공통점은 겨울이 두렵다는 것이다.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텐데…
바람이 심하게 불고 온도가 뚝 떨어지면 괜시레 몸을 사리게 된다…
어제는…
아침 퇴근길에 차가운 바람 탓인지…
갑자기 얼굴이 후끈 거리고 귀가 가렵고 딱딱해지면서…
살짝 놀랬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기왕증을 생각하며
Es는 사랑이란 것도 혹시 기왕증은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열병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다시 사랑이 다가올 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모른척 하고 싶어지고…
사랑도 하기전에 벌써 지쳐버리거나
덜컥 겁 먼저 내게 되고
자기가 알아서 대처하고 반응하기도 전에
알아서 반응하는 가슴…
쿵딱쿵딱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 ‘
하는 생각들…
아마도
아름다은 좋은 추억을 남겨준 사랑이건
몇 달을 시달리게 하고… 눈물로 지새우게 했던 아픈 사랑이건…
그 증세는 비슷한 거 같다…
한 걸음만 먼저 내딛어도 괜찮을 것을…
빌어먹을 [기왕증] 때문에
조금 더 소심해지는 모습…
사랑에는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오랜 후유증이 괴롭히긴 해도…
아마도 그 [기왕증]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건
세월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래 기왕증도 차가운 곳에서 계속 지내다 보면
언제가 모르게 싹 증세가 없어지는 것처럼…
그 [기왕증]에도 제일 잘 듣는 약은
또 다른 사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두려움과 망설임을 넘어서야 진정으로 시작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