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밤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내리는 빗줄기에 목이 컬컬해지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친구에게 “막걸리나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빈대떡과 막걸리를 생각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지만 막상 친구를 만날 때쯤 되니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져 대충 아무데나 들어가자며 큰길가의 포장마차로 뛰어 들었습니다.
동네이긴 했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돼지 오도독뼈와 친구가 꼭 먹고 싶다는 굴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먼저 나온 술안주인 굴에 초장을 찍어 홀짝홀짝 한 병을 비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포장마차 한 구석 천막이 들리며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두리번거리는 듯 하더니 곧, 난로 건너 우리 옆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작업가방과 허름한 옷차림이 아마도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분 같았습니다. 어쩌면 좋지 않은 날씨에 인력사무실에서 그저 하릴없이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침 그때 제가 시킨 오도독뼈 안주가 나왔고 젊은 안주인은 무엇을 주문하시겠냐고 그분께 여쭈었습니다.
잠시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바라보던 그 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제일 값싼 안주의 가격을 물어봤고 이내 회를 제외한 모든 안주의 가격은 ‘만 원’이라는 주장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문을 재촉하는 막내 딸만한 주인 앞에서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을 하던 그분은 소주 한 병만 시키면 안되겠냐고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뗐습니다.
“소주만요?” 하는 주인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일 끝마치고 밥을 먹으면서 한 잔 해서 그러는데 안주시키면 다 남을 것 같아서….”
젊은 여주인은 가벼운 한숨을 쉬며 잠시 고민에 빠지는 것 같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그냥 드릴 안주가 없거든요. 저 분들 드시는 오뎅 국물 밖에 없어요.”
아주머니는 저희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난 저거면 되는데.” 어르신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죄송합니다. 안주 안 시키시면 곤란할 거 같네요.”
그리고 그녀는 등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분은 잠시 낭패한 듯한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다른 손님이라곤 없는 그곳에서 친구와 저 역시 난감한 기분이 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옆에 앉은 친구와 저는 어릴 적부터의 오랜 벗인지라 서로의 속마음을 눈빛으로 주고받았습니다.
‘어떡할까. 그냥 우리가 하나 시켜드릴까?’
‘그냥 내 버려 둬. 우리가 술 마시고 싶은 사람들 술값까지 대줘야 하냐?’
‘그래도 꼭 한 잔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으니까 그러지. 그럼 우리 안주라도 나눠드릴까?’
‘아서라. 그럴 생각 있으면 돈 많이 벌어서 양로원이나 하나 짓든지.’
결국 그 분은 우리들의 멋쩍은 눈빛을 뒤로한 채 엉거주춤 가방을 짊어지고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와 저는 조금 전 눈으로 나누던 대화를 입으로 옮겨 계속 했습니다.
“에이, 그냥 한 병 드리지. 하긴 뭐 아줌마 탓할 거는 못되는데 그래도 아쉽다. 옛날엔 그냥 소주만 시켜도 됐는데.”
“야, 네가 장사해봐라. 세상이 원래 다 그런 거야. 살려면 다 얄팍해 지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는데. 술 많이 취한 양반도 아니고. 뻔하지. 집에 가서 다 큰자식들 있는데서 더 마시기 뭐하니까 여기서 딱 한 잔 더 하려는 거 아냐. 마침 비도 오고 손님도 우리밖에 없으니까, 이런 날은 좀 봐주면 어떨까 싶어서 그런 거지.”
“하긴 그렇다. 만약에 일당 받았다 해도 용역 사무실 떼어주고 왔다갔다 봉고비(차비) 떼어주고 하면 5만 원이나 받을까. 근데 돈 만 원씩 안주 값으로 내기는 뭐하지. 하긴 네 말대로 예전엔 소주 값만 있어도 포장마차에서는 걱정 없었는데.”
“야, 그게 벌써 언제적 이야기냐?”
“그게 말이야….”
고등학교 때 술 한잔 안 마셔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건 당당히 술집을 출입할 수 있었던 시절 종종 들렀던 술집 중 하나가 바로 동네 경찰서 건너편 포장마차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간 크게’ 강력계 형사님들의 옆자리에서 성인인척 소주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때 그곳에서 기억나는 편안한 장면 중에는 홀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아주머니 소주 반 병만 주세요”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키는 사람이나 그 주문을 받는 사람이나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일상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늘 그렇듯 소주 한 병에 당근과 오이 그리고 초장을 내어주고 거기에 따끈한 오뎅 국물까지 보태 주었습니다. 중요한 건 소주 반병의 기준은 ‘어느 정도’ 자의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저 대충 눈대중이었던 것입니다.
즉 자신이 적당히 먹다 남기면 그것이 반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긴 술은 다음 반병을 주문한 손님에게 다시 내어주게 되지만 보통 그 양에 대해 불평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반병을 넘게 먹고 남겨도 주인 아주머니는 별다른 타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아주머니는 그 손님이 나간 후 말없이 새 술병을 따서 그 손님이 마신 술병에 모자란 양을 채우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병의 금액은 정말로 반병 값이었습니다. 소주 한 병에 천 원을 받던 시절 그 가격은 물론 절반이었고 그보다 싸던 시절도 당연히 가격은 그 반이었고 야채와 오뎅 국물은 늘 ‘소주 반병’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격은 누구라도 가계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하루의 피로와 맞바꾸기에 아깝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소주 반병을 찾던 사람들은 적당히 삶에 치이던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원치 않은 시위진압에 나서는 것이 괴로웠던지 길 건너 경찰서에 근무하던 전경들도 종종 눈치껏 홀로 소주반병을 비우며 깊은 한숨을 쉬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출출한 배를 ‘채워주러’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만삭의 아내를 위해 값싼 닭발과 족발을 주문하던 젊고 가난한 신랑들 역시 그 곳의 단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족발집들이 많았지만 가벼운 주머니 사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이 곳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남편은 안쓰러워했지만 그 아내들은 너무도 맛나게 먹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남편들은 결국 그 미안함을 안주 삼아 소주 반병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곳을 찾는 가장 많은 고객들은 결국 평범한 아버지들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저 성실하게 일하고 하루의 힘든 삶을 마무리하던 보통의 아버지들 말입니다. 그런 아버지들이 가끔 자식들 눈치 보기는 싫고, 주머니까지 가벼울 때 찾게 되는 포장마차, 소주 반병의 주문에도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던 주인의 친근함이 그리워집니다.
‘부딪히는 술 잔 속에 떨어지는 별을 보며 하늘을 마신다. 인생의 파란 꿈 펼치는 포장마차’
오래 전 가수 현숙씨의 ‘포장마차’라는 노래에 있던 한 구절입니다. 포장마차가 인생의 파란 꿈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평범한 서민들의 피곤함만이라도 풀어 줄 수 있는 곳으로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왔으면 합니다.
오 마이 뉴스 /나영준 기자 (mistory@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