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봄 날의 그 공연

줄리에게 박수를…

어딘가에 몰입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고 또다른 나를 느끼게 한다는 것은

나를 다시 가꿔주고

힘차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에…

저는 공연 보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공연, 저 공연…

몇년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젠 공연에 대한 어떤 감흥도 점점 없어지고

공연을 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웃다가 나오거나…

나와서 “햐~ 재밌다 ” 하고 그냥 끝나버리는

그런 공연들이 점점 많아지더군요….

그 때 즈음….

줄리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신선하고 상큼한 에피타이저로 시작해서

중후한 메인요리와

깔끔한 에피타이져로 마무리한

훌륭한 코스 요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줄리는 저 같은 [개인역량비 공연 과다 관람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산삼을 넣어 만든 전복죽이였습니다.

병자에게 건네 준 전복죽처럼

다시 입맛을 돌게하고

병석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줄리를 세 번 보게 된 이유는 바로

‘작가의 멋진 글 솜씨와

박희순씨의 멋진 연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몇 번이고 다시 봐서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괜한 욕심과 고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에는 햄릿과 김석동씨에게 푹 빠져

그의 얘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번째에는 모든 배우들의 동선과 몸짓…

그리고 이야기의 큰 그림을 다시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세번째에는 머리도 나쁜데

주옥 같은 대사들을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줄리에 나오는 대사들을 읊조리며

베시시 혼자 웃음을 띄우는 이유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 한구석의 인생과

오랜 고전의 울림 때문일 겁니다.

잘 녹아든 고전의 대사들과

마치 제 인생을 얘기하는 듯한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들은

지워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극중에 줄리가 반지를 빼는 장면 이후에

줄리가 석동씨에게 잘 대해주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유치한 드라마 같았다면

바로 줄리엣이 오필리어가 되어 버렸다면

이렇게 열광하지 않았을 겁니다.

”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줄리엣이 빨리 오필리어가 되는 방법도 있고
  
  그게 좀 더딜 것 같으면 제가 로미오가 되는 방법도 있는 거죠 뭐 “

그 대사가 저를 명치를 강타했습니다.

이로 안 되면 잇몸으로 씹고 살아야 하는게 인생…

자신을 깍아 상대에 맞춰서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사랑해야죠….

그게 바로 또다른 커다란 행복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아가고 있거든요….

줄리가 앵콜 공연을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장을 쉽게 못 찾을 거 같습니다.

2004년 4월의 줄리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

다이어리 한켠에 별표와 함께 적어놓은

2004년 봄날의 줄리의 따뜻한 느낌이

계속 제 인생의

밝은 횃불과 소금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공연중에 열심히 적어와서

수첩에 가지고 다니며 외우던

[줄리]의 명대사를 다시 읊으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낼 겁니다.

이름 없는 꽃은 정말 이름 없는 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그 이름을 찾아 내지 못했을 뿐,

그 꽃들도 분명 향기를 뿜고 벌 나비를 유혹했을 테니까요.

아직 제 이름을 찾지 못한 모든 꽃들의 향기가

오늘 하루 종일 코끝을 찔러댔습니다.

향기에 취해서 제일 먼저- 제가 있는 자리가 어딘지 확인해 주고 있는

이 줄리에게…

줄리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