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우연 <17>

우연  #17

철이: 그녀가 내 기초 일본어 책을 가지고 갔습니다. 나는 지금 그녀와 그녀의 친구 레포트를 대신 작성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공대에서 듣는 컴퓨터에 관한 교양수업을 듣나 봅니다. 하하 벌써 다 해버렸군요. 이걸 갖다 주어야 하는데 뭐라 그러며 갖다 주지요? 설명까지 적었습니다.

민이: 그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네요. 그는 기초일본어 교양을 듣나보군요. 그 교양은 대부분 사대에서 강의를 하죠. 그가 말한 부분까지 토를 다 달았습니다. 그가 열심히 토를 달고 뜻도 써놓은 곳은 참 많이도 틀려 있었습니다. 그것까지 고쳐주었지요. 갖다 주어야 하는데 뭐라 그러죠? 친구는 나 때문에 그냥 레포트하나 거저 하게 되었군요. 친구가 졸고 있네요. 몇장더 토를 달아준다고 그가 싫어하진 않겠죠?

철이: 누군가 나를 깨웠습니다. 내눈앞에는 그녀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레포트 다 했냐고 물어보느군요. 물론 다 했지요. 고맙다며 밥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합니다. 이런 영광스러울때가…

민이: 누군가 나를 깨웠습니다. 나를 깨운건 친구였는데 그도 같이 있네요. 호호 좀 부끄럽군요. 그에게 일본어 교양교재를 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점심때가 훨씬 지났습니다. 친구는 뭐 한일이 있다고 자기가 주도권을 잡습니까?
우리 밥먹으러 갈건데 같이 가자?
좀 느낌이 이상하군요. 우리?  

철이: 그녀가 이 경양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나봅니다. 주인언니랑. 아니지 주인아줌마랑 친하게 얘기를 몇마디 주고 받았습니다. 이런 꿈같은 일이… 비록 데이트도 아니고 친구사이로 시간의 여유를 즐기러 온것도 아니지만 난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도 할 수 있는 자격으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별 어려움없이 이런 자리가 마련될 줄 알았다면 왜 3년동안 말 한마디 못 건넸을까요? 하하 그 삼년동안 서로 모습을 익혀서 이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거라구요? 전 중간에 군대 갔다 왔는데요.
그녀와 그녀친구가 나를 마주보며 앉았습니다. 봄이 만연했는데 아직 이런 뜨거운 물을… 할 말이 안떠오르니 물만 자꾸 마셔지네요. 그녀도 물을 다 마셨군요.
그녀의 친구가 서로 아는 사이냐고 물어봅니다. 나도 그랬지만 그녀도 아무런 대답을 안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나를 대충 기억을 합니다. 조금 쪽팔리는군요. 3년전 교양과목 자기네 뒤에 앉았던걸 그녀 친구가 기억을 할 정도니 그녀는 말할 나위 없겠죠. 이상하게 생각을 했을수도 있겠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나 한테 말을 많이 걸었습니다. 그녀는 그냥 옆에서 별말 없이 앉아만 있었구요. 그녀친구의 질문에 나는 그녀에게 답하는 식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녀친구는 성격이 활달하군요.
괜찮습니다. 그때는 가방만 다친거에요.
전공이 그쪽이다 보니 컴퓨터는 좀 다루는 편이지요.
삼학년이에요.
하하 군대를 갔다와서 제가 한 학번 높을걸요.
(그녀가 삼학년인건 저도 알아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다음에도 절 보시면 부탁하세요. 해 드릴께요.
팬티엄이요? 그건 인텔사가 다른 회사 씨피유와 차별화를 위해 586이라 쓰지 않고 고유한 자사 상표로 정한 것으로 별 뜻은 없어요. 다른 제조회사에서도 386, 486 이렇게 이름을 쓰니까 구별지을 필요성을 느낀 것이죠.
씨피유요? 아직 안 배웠어요? 사람으로 치면 뇌라고 봐야죠.
예? (모른다고 해야하나? 아는 사이라고 해야하나?)
그녀의 친구와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그녀친구가 다시 그녀와 나의 관계를 물었읍니다. 에구구 고개를 못들겠군요. 설마 했는데… 가만 아직 상병이겠구나. 신상병 제대하면 보자. 조용히 밥나올때까지 기다려야 겠습니다.

민이: 친구가 밥산다고 했으니 조금 비싼곳도 괜찮겠지요. 전에 아르바이트 했던 경양식점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후후. 나를 마주보며 그가 앉았네요. 그와의 만남을 참 많이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마주대하고 보니 왜 그렇게 마음만 졸여야 했었는지, 바보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말을 하고는 싶은데 친구도 있고 또한 어색함에 물만 찾게 되는군요. 왜 친구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친구에게 그가 전에부터 내가 찍어논 사람이다라고 말해 버릴까요? 그가 나한테 편지보낸 사람이란 것도 말해 버릴까요? 둘이서 아주 죽이 맞아 재밌게 이야기를 합니다. 점점 기분이 안좋아 질려고 합니다.
석이 있잖아? 걔하고 같은 군대 고참이었어. 그래서 좀 아는 사이야. (야이 기집애야 왜 자꾸 물어봐?)
그가 자기가 죄지은게 있는줄 아는가 봅니다. 갑자기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숙인채 물도 없는 컵을 입에다 갖다 대는군요.
예? 에…  친구가 물었을땐 잘만 대답을 하더니 내가 물으니 머뭇거리네요. 표정도 굳었습니다.
교양 들을 만한게 없어서요…
예? 예. 월요일 5.6교신데요.
….
….
이참에 군대 있을때 편지 받은거 누가 준건지 아냐고도 물어 버릴까요? 아쉽게도 밥이 나와 버렸네요.
어머머. 웃기는 애야. 자기가 산다고 했으면 자기가 내야지. 왜 그가 계산을 할려고 할까요? 그가 내던 돈을 빼앗아 도로 그에게 주었습니다. 친구가 또 나를 태울듯한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날 한번 쳐다보고 계산을 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왔습니다. 친구가 그사람 괜찮다고 하네요. 귀엽다고 합니다. 그가 자기보다 선배인데 말입니다. 열람실에서는 조용히 해야지요? 조용히 해! 기집애야.  서로 아는 사이냐고 또 묻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던게 잘 아는 사이같다면서…

철이: 왜 밥은 빨리 나오지 않습니까? 경양식점에서 볶음밥 시켰다고 무시하는 겁니까?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렇게 쌀쌀한 어투로 물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때는 불어를 했습니다.
일어가 쉽다고 하길래…
…아니요. 어렵던데요.
(불어도 그렇게 발음나는데로 토달고 외웠어요? 다들 그렇게 공부하지 않나요?) …예.
많이 틀렸던가요?
…그냥..(편지는 잘 쓰더군요? 그럼요 좀 쓰는 편이죠. 비록 마음 아팠던 답장은 받았었지만…)
계철인데요.
꼭 발음이 개철이처럼 들려서요.(분명히 개철이냐고 물어놓구선…)
형하나 있는데요.
우리형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우리학교 안다니는데요.
아니 그냥 그녀석이 자랑을 하길래…(그녀석이 분명 훔쳐왔다고 했는데… 말이 틀리잖아. 뭐? 고참이 안가져오면 엄청 괴롭힐거라며 사진을 달라고 했어? 너 담에 제대해서 복학하면 죽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랬어요.
심심해서요. 군대 있을때는 장난삼아 썼지만 그때는 아닌데…
예? (옆에 친구도 있는데… 직접 갖다 놓으신 거에요? 그럼 직접 갖다 놓았지. 누구한테 심부름 시키남. 다행히 그녀의 친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한 표정입니다.)
예. 곧 드릴께요. 아직 싫증이 안나서요.(하… 그녀가 메탈쪽도 좋아할려나? 그녀가 준 테이프가 누구 노래였더라? 기억을 못하겠읍니다. 그것만이라도 알면 그냥 사서 선물삼아 주면 되는데…)
땀이 다 납니다. 살았습니다. 밥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 봤습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밥을 먹네요. 나를 좀 곤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밥먹는 모습은 참 예쁩니다. 그녀의 친구가 밥을 산다고 했지만 내가 계산을 해야 겠지요. 그러고 싶습니다. 그래야 내가 그녀에게 식사한끼라도 대접한게 되니까요.왜 그런데 그녀가 그런 내마음을 몰라주고 돈을 뺏어 도로 줄까요? 도서관까지는 별말없이 잘 왔습니다.
헤. 일본어 책을 펴 봤습니다. 옆에 설명까지… 발음도 깨끗하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말한 범위보다 몇장 더 토를 달아 놓았군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오늘은 오래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친구와 나가면서 나한테 인사를 하고 갔거든요. 이제 그녀를 보면 나도 인사를 해야 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