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writing in my diary

아침에 학교가는 마을버스 안에서 사람들로 꽉 찼는데도 자리를 차지하려 비집고 들어오는 아줌마 때문에 기분이 팍 상했었다. 젊은 학생 앞에서 몸을 바짝 붙이고 연신 “아휴~힘들어”를 해대는 모습도 앉아있는 사람을 가시방석에 앉힌다.

그러다가 문득 몇달전 옛 남자친구와 몰상식한 아줌마들의 얘기를 하다가 대판 싸운 일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아줌마들의 남생각 안하는 비매너적인 행동을 무지무지 비난했으며 아줌마들 너무 싫다고 했다.  싸잡아서 아줌마들을 욕했었다. 그리고 끝에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넌 나중에라도 그렇게 되지 말아라.” -_-;
처음에 말 싸움 시작할 때는 ‘이인간도 어쩔수 없는 마초이즘자군 -_-‘글케 생각했다.

그 당시 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버거킹에서 맛있게 와퍼먹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로….
나도 어쩔수 없는 여자이기 떄문에 동질감을 느껴 열 받아서 그렇게 눈물이 난 것이었을까. 아줌마들이 왜 그렇게 치열하다못해 악바리같이 되었는지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남자들에게 짜증이 난 것이었을까.

나도 아줌마들의 그런 행동은 짜증이 나지만 그 아줌마 자체가 싫은건 아니다.  아줌마란 존재가 제 3의 성으로 불릴만큼의 그런 특별한 것이 있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역시 그런 아줌마가 싫은 건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으로 사회와 한국이 존재하는 것도 어머니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말 나도 앞으로 그런 아줌마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0대에는 20대의 나의 모습을 그려봤고 지금은 30대의 내 모습이 어떨까 상상한다.
하지만 지금 40대나 50대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진 않는다. 멀게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상상하기 싫기 때문도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몇년 전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정말로 lady first를 체감했는데 여자들이 “thank you”라고 하는 것 조차 나에게는 어색했다.
어느날 나보다 열살쯤 위였던 백인 남자가 나보다 먼저 식당문에 도착했는데도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난 아무 생각 없이 “you go first.”라고 말했다. 근데 먼저 들어간 그 분은 나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하는 말 “you are liberated.”
그 분은 내가 페미니스트정도 되는 줄 알았을까. 오히려 미안하다고 당신은 해방된 여성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과연 그랬을까.
나는 그 사람이 먼저 왔기 때문에 먼저 들어가라고 얘기한 합리주의자였을까.
아니면 여자가 먼저지만 괜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 본 것이었을까.

문제는 ‘남존여비’였다. 우리집에는 아들이 없어서 난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남녀차별 받고 자라진 않았고 아버지도 보수적이고 무서웠지만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셨기 때문에 남자가 먼저라는 생각은 별로 안해봤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도 모르게 남존여비가 몸에 배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나를 열린 시각의 소유자로 만들어준 잭(아까 그 남자)에게 고마워 할 일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줌마들은 오늘도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고 물건값을 깎고 또 깎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민망해서 많~~~이 깎진 못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깎겠지.
또 마초이즘으로 억눌리고 알수 없이 맺힌 우리나라 여성들 가슴의 한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성범죄자 명단에 여성이 포함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 처럼 과거 여성에게는 있을 수 없었던 일들도 더더욱 많이 생기겠지.

어떤 광고에 나오는 문구 같지만
그래도 나는 여자라서 행복해~

덧붙이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얘기가 이렇게 까지 나갈줄은 몰랐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