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우연 <1>

우연 #1

철이: 오늘도 난 도서관의 이젠 내자리로 정해져 버린 좌석에 앉았습니다.

      이곳을 내자리로 만든건 며칠째 내 옆에 앉고 있는 한 여학생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녀는 내 옆좌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많은 시간을

      도서관 내 옆자리에서 보냈습니다.

      하하 이정도 시간이 되면 그녀는 항상 날 미소짓게 합니다.

      또 엎드려 자는군요.
    
      그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학교분위기로

      한산한 도서관에서 그녀는 오후를 열람석에 엎드려

      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멀쩡하게 생긴 이 아가씨가 이제는 침까지 조금 흘렸습니다.

      뽀얀 그녀의 목덜미가 아름답습니다.

      두껍기만 한 일본어 책을 베개삼아 그녀는 어딘가 꿈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민이: 오늘도 그는 그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전부터 나와 눈이 마주친 멀쩡하게 생긴 남학생하나가

      내기억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매일 도서관을 나왔고 이제는 일정하게 정해진 좌석에

      앉고 있습니다.

      그의 옆자리는 내자리입니다.

      오후가 되면 전 항상 졸음이 옵니다.

      오늘같이 방학이라 한산한 도서관 열람석은 잠자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면 그는 항상 나에게 미소를 줍니다.

      호호 오늘도 그는 내가 잠에서 깨었을때 속된말로

      머리를 쳐박고 자고 있었습니다.

      책상바닥이 상당히 딱딱할텐데 그는 책도 안받치고 그냥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잠들어 있습니다.

      호호 그의 목에는 제법 큰 점이 두개가 있군요.

철이: 오늘은 그녀가 자리를 오랜시간 비우는 군요.

      하기야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공부가 잘 될리 없지요.

      나도 커피나 한잔 마시고 와야겠습니다. 아.

      그녀가 저기 오는군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의 잠든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나옵니다.

      그녀도 커피를 한잔 할려나 봅니다.

      내 뒤에 섰군요. 밀크커피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커피색깔만 흉내낸 그냥 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습니다. 말리고 싶었습니다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기에 그냥 말없이 자판기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녀가 커피를 한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자기 바로 앞에도 휴지통이 있었는데 그녀는 애써 나쪽에

      있는 휴지통에다 그 컵을 버리고 가더군요.

      그리고 나에게 못마땅한 눈짓을 보내고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민이: 오늘은 날씨가 참 더웠습니다.

      도서관에는 나왔지만 공부는 되질 않는군요.

      이런날 애인이라도 있으면 어디 놀러라도 갈텐데 아쉽게도 없네요.

      공부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에어콘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는 커피숍에서

      책이나 읽고 와야겠습니다.

      옆자리의 남학생은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척을 하는군요.

      하지만 전 알지요.

      오전부터 펴져 있는 연습장은 아직 한장도 넘겨지지 않았다는것을…

      커피숍에서 홀로 냉커피를 마셨습니다.

      다시 도서관에 오니 그가 나와있었습니다.

      자판기커피를 뽑아 마실려나 봅니다. 그래 더운커피도 한잔 더 하지뭐.

      그의 뒤에 섰습니다. 목에 점이 또 보이길래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가 컵을 뽑고 자판기에서 멀어졌습니다.

      밀크커피를 눌렀는데 커피를 가장한 맹물이더군요.

      그도 맹물인걸 알았을텐데 나에게 그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100원이었지만 아깝더군요.

      일부러 그녀석 앞에 있는 휴지통에다 따지듯 들고있던 컵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웃어버리더군요.

철이: 그녀는 일어교육과 학생인것 같습니다. 일본어인듯한 말을 중얼거리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중얼거리면 실례가 되지만 뭐 주위에

      공부하는 학생도 별로 없었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기에

      내 좌석 칸막이에 귀를 대고 그녀의 음성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보다 고학년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녀의 일본어 솜씨는유창해 보였습니다. 나도 뒤지기 싫었습니다.

      연습장에 나조차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 전공 공식들을 그려놓고

      담배나 필려고 자리를 떴습니다.

민이: 괜히 앉아 있으니까 또 잠이 오는군요.

      책을 폈지만 일본어단어들이 생소했습니다.

      재수를 했지만 난 아직 일학년이기 때문에 이런 문장들은

      읽을수가 없었습니다. 히나가타나 첨부터 다시 외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주위에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맘놓고 중얼거릴수

      있었습니다. 중얼거리다가 책장도 넘겨보았습니다.

      그가 좀 내 중얼거림이 시끄럽게 느껴졌나봅니다.

      못참겠다는 듯 책상 칸막이사이로 머리를 박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치. 자기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그가 자리를 비운 책상의 연습장을 보았습니다.

      몰래 넘겨보기도 했습니다. 글씨는 예쁘게 쓰더군요.

      무슨과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어려운 공식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연습장 앞에는 9012** 전자공학과 성혜철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삼학년이구나…

철이: 오늘오후도 그녀는 잠이 들었군요. 제발 침만은 흘리지 말기를…

      그래. 오늘은 침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내자리 한쪽편에 씨씨인듯한 남녀둘이가 연애하듯

      공부를 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아니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 옆자리의 그녀는 태연하게

      잠자리에 들어있습니다. 내가 일어났을때 그녀는 가방을 싸가지고

      나가더군요.

      무슨 좋은일이 있는지 나를 보고 히죽 웃고 가더군요.

민이: 오늘은 기분이 나빴습니다. 옆좌석에 씨씨가 앉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척 하는게 참 아니꼽더군요.

      그꼴이 보기 싫어 책상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습니다.
  
      삐삐가 진동을 하더군요. 뿌듯했습니다.

      내 친구들중에 진동이 되는 삐삐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옆좌석의 그가 내삐삐진동을 느꼈으면 했는데 그는

      일상처럼 머리를 쳐박고 자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미팅을 하라고 하는군요.

      대타로 뛰는게 기분이 별로지만 미팅이 참 설레였던 나이라 바로

      승낙을 했지요.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뜰려고 할때쯤 그가 일어나더군요.

      쯧쯧

      침이나 좀 닦지…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미팅은 대타로 나갔다가 남자쪽에서도 한명이 빠져

      벤취신세만 지고 왔습니다.

철이:오늘은 늦잠을 자버린 관계로 도서관을 오후에 나갔습니다.

     내 고정된 자리는 나이든 남자선배가 앉아 있었읍니다.

     뭔가 히죽거리는게 기분이 별로였지요.

     그녀는 여전히 그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군요. 참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깊이 잠들었나봅니다.

     아직 침을 흘리고 있지는 않지만 왠지 불안해 보였습니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그녀가 잠들어 있는 자리에다

     휴지를 하나사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옆좌석의 남학생은 떡대같은게 무식해 보이더군요.

     무슨과인지… 삭막한 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책을보니

     전자공학과학생이었습니다. 땜쟁이였구만…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분명 내 연습장을 꺼내었는데 표지에 딴놈녀석의

     이름이 적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아. 우리형도 전자공학과 다니는구나라는걸 일깨워주는 이름이었읍니다.

     참 저는 전산과학생입니다. 그리고 이제 싱싱한 91학번입니다.

     이름이 뭘까요?

     성계철입니다. 개철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민이: 오늘은 그보다 내가 먼저 도서관에 왔습니다. 그가 앉아야 할 자리에

      떡대같은 아저씨가 앉을려고 하더군요. 분명 이 자리는 앉을사람이

      있는데요.라고 말했지만 그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흑흑 나쁜 아저씨…

      오후가 되니 그가 내옆에 있었다면 잠이 쉽게 들었을텐데,

      떡대 아저씨 때문에 잠이 쉽게 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오후 도서관실내는 너무 더웠습니다.

      떡대 아저씨가 자리를 비운틈을 타 조금 눈을 부쳤지요.

      일어나서 눈을 떠 옆자리를 보니 눈에 들온건 늘 미소짓게 했던

      그의 머리박고 주무시는 모습이 아니라

      떡대아저씨의 히죽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실망… 책상위에는 화장지 한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떡대아저씨의

      히죽거리는 모습이 의심스러웠습니다.

      혹시 내가 침이라도 흘리지 않았나 걱정이 되어

      거울을 보았습니다. 괜찮더군요. 화장한 내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내 화장기술은 언니들 덕분이지요. 일학년치고 나처럼 세련되게 화장한

      학생들은 드물걸요. 참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전 일어교육과를 다니고 우리집 네딸중 셋째입니다.

      92학번이지만 재수를 했고 하지만 73년생입니다.

      생일이 좀 빠르거든요. 이름은 소수민입니다. 이름 이쁘죠?

      혹 소수민족 이런식으로 이름가지고 놀리면 저 화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