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우연 <12>

우연 #12

민이: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호호 전 반 백조네요. 학교는 도서관과

동아리활동 때문에 계속 나갔습니다.

현석이한테선 편지가 왔는데 그에게서는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현석이의

편지에선 그에 관한 내용이 별로 없읍니다. 아쉽군요. 오늘 또 하나의 편지를

그에게 써 보낼꺼에요.

철이: 또 편지가 왔습니다. 저번과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랑해요 개철씨…? 고참이 다방레지하고 연애하냐고 그럽니다. 자전거 이녀석

이름도 자숙이라고 지어서 보냈습니다. 녀석이 내가 자기보고 자전거친구라

그러는걸 아는가 봅니다. 자숙이? 편지를 썼습니다. 전에 보낸거처럼 세련되고

애틋하게 보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자숙이라 하지 말고 수민이라고

해주었음 좋겠다고 말했지요. 아니면 아예 무기명으로 보내든지… 그래도 글씨는

여전히 예쁘군요. 좋은 부댄가 봅니다. 이제 겨우 상병인 주제에 편하게

내무반에서 글을 쓸 수 있나 봅니다.

참 빠릅니다. 좀 이상하기도 하구요. 어떻게 내가 편지를 보낸지 사흘만에 답장을

받을 수 있지요? 무기명입니다. 애틋한 내용이군요. 낯선 마주침도 그것이

계속되면 그리움이리라. 놀랍군요. 녀석이 이런 문장도 지을 수 있다니…

민이: 너무 노니까 재미 없네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습니다. 교문앞

레스토랑같은 경양식점 서빙보는 자리가 하나 있네요. 조용한 분위기가 맘에

듭니다. 호호. 조용한게 아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니까 학생들이 참 많이 옵니다.

볶음밥 드세요. 제발… 또 양식입니다. 한번 세어 봅시다. 메뉴판. 양식이면 물.

세팅. 수프. 밥하고 고기그릇 두개 들고 가야죠. 후식. 다시 그릇. 후식그릇. 그냥

차나 음료수만 시키는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메뉴. 차만 갖다주면 끝이니깐요.

한달만 하고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오늘은 군에 있는 후배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피곤해서 글씨가 별롭니다.

석이 편지에도 그에 대해서 조금 적었습니다. 괜히 그가 보고 싶네요. 호호 내가

그사람을 혼내 줄 수 있을까요?

인연이 닿아 알게된다면 그럴수도 있겠네요.

철이: 신일병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누구편질까? 의심스럽게 관찰을 했지요.

녀석이 편지를 숨깁니다. 결국 뺏었읍니다. 편지봉투에는 소수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햐. 냄새좋다. 그녀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녀석이 참 부럽군요.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별 내용 없군요. 앗 나에 관한 말이 있습니다.

현석아 너 괴롭힌다던 고참 성병장인가? 그사람 말 잘들어. 그래도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내가 혼내줄테니까. 호호.

저녀석이 그녀에게 뭐라 말했기에 편지에 이런말을 썼을까요. 무슨 내가 녀석한테

폭력을 행사했다고… 이미지 버렸습니다.

신일병 일루와.

예.

내가 널 괴롭혔냐?

예 그렇습니다. 어쭈 신일병 이녀석 진짜 빠져도 너무 빠졌다. 그래서 녀석을

귀엽게 패주었습니다. 하지만 녀석과 나는 참 친합니다. 녀석도 내가 편하니까

개기는 척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받아 적는다 실시.

예.

성병장님은 착한 분이십니다. 절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십니다. 빨랑 적어 임마.

민이: 석이한테 편지가 두통이나 왔네요. 호호. 그에 대하여 좋게 적혀 있습니다.

아니군요. 다른 편지에는 앞의 편지는 성병장님의 갖은 협박에 못이겨 어쩔수 없이

썼답니다. 그가 그렇게 쓰라고 했다는군요. 석이는 그보고 개철이라고 그러네요.

이런 이름가지고 그러면 안되지요. 내가 보낸 편지는 그가 다 보고 있으니 그에

대한 내용은 가급적 피해 달랍니다. 기분이 별루네요. 남의 편지를

훔쳐보다니…호호 석이가 그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고참이라는군요. 그가 마음이 따뜻한 건 사실이라고 합니다. . 이제

석이한테 보내는 편지도 조금은 그를 생각하며 적어야 겠습니다.

철이: 수민이한테서 나에게로 편지가 왔습니다. 자숙이 친구 수민이라고 하는군요.

애틋하게 보내라고 했던거 때문일까요? 개철씨 애틋하게 사랑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장난치나? 바로 앞에 온 편지는 날 참 감동시켰는데 바로 또 보내온

편지는 글씨 빼고는 볼게 없습니다.

개철씨 제가 왜 무기명으로 편지를 보내요? 제가 얼마나 잘난 여잔데요.

무기명으로 보낸적 없어요. 그리고 개철씨가 보낸 편지도 유치하긴 마찬가지에요.

내무반에서 다방레지하고 연애하냐고 놀렸단 말이에요.

큭큭… 이런짓을 계속 해야합니까? 고참이 내 편지를 읽더니 쿡쿡 거립니다. 뭔가

아는듯 너도 이런짓 하냐? 차라리 가요책 뒤에 있는 주소에다 편지나 보내지?

그럽니다. 차라리 그게 나을까요?

편지를 썼습니다.

저 당신이 사랑하는 계자입니다. 이제 절 잊어주세요. 편지 주고 받기 싫어졌어요.

흑흑… 제 마음도 찢어 집니다.

앞으로 그런 편지 보내면 죽어!

민이: 에구 힘들어라. 오늘 과감히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습니다. 다른걸 찾아

봐야지요. 올해도 가을은 어김없이 깊어만 갑니다. 가을은 왜 항상 그리움을

가지고 저한테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는 봄을 탄다고 하던데…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반응이 있다면 석이 편지에 그런 내용이 적힐 만도

하지만 아직 없습니다. 언제 한번 석이한테 물어봐야 겠습니다. 그치만 석이한테

보내는 편지도 그가 봐버린다고 하는데…

가을날 우연히 마주치던 그리운 소녀는 없었나요? 그곳의 산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물들었겠네요. 내가 누군지 아직 모르시겠죠? 나에게는 가을날 내맘을 뛰어놀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는 그 소년에 대한 그리움으로 쓰는 거에요. 이 정도

썼으면 충분히 내가 보내는 줄 알겠죠?

철이: 몇장을 보낸지 모르겠습니다. 노래책 뒷면의 여자란 여자에게는 다 편지를

보냈습니다. 말년이 되니까 심심하거든요.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이런 짓 안해도 될텐데… 그래도 그녀의 향기는 신일병 때문에 느낄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죠. 짝사랑을 깊게 하면 그 사람의 자그마한 어느 무엇에도

그사람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나 봅니다.

드디어 편지가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냈던 편지의 30%정도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기명도

있습니다. 사흘동안 9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무기명의 편지는 낯설지 않은 느낌입니다. 앞서 자전거 녀석이 보냈던거라 믿고

있는 무기명의 편지와 동일인의 것 같습니다. 녀석이 계속 편지보내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그 누군가가?

물론 있지요. 가을날 우연히 마주치던 소녀가 그리움되어 내맘에 있습니다. 그리고

떠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맘속에 자리잡고 항상 가을인양 가슴떨게 합니다.

무기명이라 답장을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사놓은 예쁜 꽃편지지에다 또박한

글씨로 한자 한자 글을 써 내려 갔습니다. 자전거녀석이 보낸거라면 용서하지

않겠어.

민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학교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정류장앞 고운음이 들려서 레코드점을 바라봤지요.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들어가 신청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남이 아는건 저도 압니다. 계절은

늦가을로 가고 있습니다.

철이: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얏호. 하하핫. 내무반 모두들 이

기쁜날 잠자기에 바쁘군요. 우핫핫.

잠좀자자.

누구야? 감히 이제 제대할 날이 두자리 숫자인 내가 그것 때문에 좀

웃었기로서니…

난 한달도 안남았어 임마.

아. 김병장님이세요. 말을 하지…

이제 드디어 제대할 날이 두자리숫잡니다. 내무반에선 내위로 두명밖에 남지를

않았습니다. 핫핫…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