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어요.
그까짓 게임소프트보다 중요하지 못한 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바보같은지,
그아이에게 빌려온 디아블로 시디를 주기 위해서
오늘 그아이를 만나려고 했죠.
사실 지하철역에서 기다려라고 하면서도
가면서 나는 그아이가 표를 끊고 나와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단지 디아블로 시디는 핑계였을 뿐.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인게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 상상이었을 뿐.
그아이와 나 사이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그아이는 시디를 받고 싶었던 것이겠죠.
나와 헤어지고 싶어도, 시디때문에 잘해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될만큼.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까짓 3만5천원짜리 시디를 떼어먹지는 않았을텐데.
가. 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나와주기를 바랬는데.
들어가. 라고 말하는 그애에게 망설임없이 뒷모습을 보이면서도
그아이가 내 뒷모습을 보고 쫓아나와주기를 바랬는데.
그래서 날 잡고 나와 이야기 하고 싶어하기를 바랬는데.
그아이는 웃고 있었지만, 태연한척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모두 믿을 수 없어져 버려서
난. 이제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난 웃지 않았어요. 생각대로 냉정히 돌아서서 집으로 와버렸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디사이에 끼워둔 아침에 열심히 썼던 편지를 꺼내서
주머니에 집어 넣었죠. 사실 지하철 앞에 서 있으면 주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언제나처럼 지하철 입구에 서 있으면 주려고. 열심히 썼던 편지인데.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을때 꺼내어 주머니에 넣어버렸어요.
집으로 돌아오며 그 편지를 다시 읽으며. 허전함이 생겼어요.
무언가 허무함이.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나고.
헤어지자는 말조차 필요가 없어질만큼..
난 결국 이런 존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어요. 하하.
이젠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오늘 너무 속상해서. 술이라도 마시고 싶었는데..
아 나 너무 불쌍한거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