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야기는 소아마비로 평생 휠체어를 사용하는
임 영자(39세)님이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준
남편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사부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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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지금 시간이 새벽 5시30분이네요.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따듯한 이불속에서 단꿈을 꾸고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에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을 에듯
차가운 새벽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 한
우리 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내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강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련만, 평생을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기에
나무나 안타까워 자꾸만 서러워 집니다.
자동차에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껴 쓰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이 아리게 합니다.
불편한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나의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계신 친정
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에게 어리광이 늘어나는 어머니를 보면
많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도 미안해
남 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도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 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북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 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 나섰지요. 하루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게 되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길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데 당신은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을 파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슬픔은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겠노라고 나 스스로 다짐을 했답니다.
여보,
지난 결혼 10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때
패물 한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였지요.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마음 아파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반지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3년 전 당신은 여덟 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를 가르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구었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세요”라고…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에요.
남들처럼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나의 곁에 있기에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