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핸드폰을 사지 않는 이유 7가지…
"뜨벌…너 진짜 핸펀 안 사냐..!?"
어제만 해도 연락하기 힘들다고…
맨날 어딜 그렇게 싸돌아댕기나며
핸드폰 좀 하나 사라는 친구들의 갈굼을 받았지…
하지만, 난 그들에게 다~ 이유가 있다며
일만삼천오백육십일곱가지의 이유를 다 들어보겠냐며…
핸드폰은 사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지…
이유가 너무 많다고
뭐 얼마나 거창하겠냐고 하겠지만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는 이유들이기에
술 마실때 주절거리는 대표적인 이유 7가지엔
다들 고개를 끄덕이지…
핸드폰을 사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자유로움 때문이지…
난 도서관 같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장소에서
전화 때문에 열람실을 들락날락하는 이들이 보면 안타깝지…
복잡한 지하철에서도 뒷주머니에서 힘겹게 핸드폰을 꺼내
받아드는 그들이 안쓰럽지…
왜 그렇게 바쁜지…
꼭 받아야만 하는 전화인지…
전화를 이용하는게 아니라 전화에 구속 당한 느낌…
그런건 나는 딱 질색이라 말하며 삐삐를 고집하지…
두번째 이유는 정 때문이지…
친구의 낙서든 내 낙서든 긁적거림이 있는 종이라면
메모지 한장도 맘대로 버리지 못하는 성격…
바보같이 사소한 정에 연연하는 성격 때문에
그동안 정든 삐삐를 죽.일. 수가 없지…
내가 배신했을 때 그 삐삐는 얼마나 슬퍼할까…
난 그 작은 행복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일만삼천오백육십일곱가지의 이유중에 뽑은 일곱가지 이유에
들어간다 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
세번째 이유는 ‘혹시나’하는 기대 때문이지…
아무런 인연 맺음도 없이
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간 그녀가 술을 마시고
혹시나 내 삐삐번호를 기억하고 삐삐를 치지는 않을련지
혹시나 내가 미쳐 하지 못한 말 전할 수 있을련지 하는
바보같은 미련 때문이지…
술에 취해 수화기를 들었는데
"지금 호출하신 번호는 서비스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다시 확인해 주십시요.."
라는 메세지가 나올 때의 가슴저림은 아는 사람만 알 수 있지…
평소엔 잊어먹었다가도…술만 먹으면 생각나는 전화번호…
비단 나뿐만은 아닐꺼라고 생각하지…
네번째 이유는 개성이라는 조금은 지랄 같은 이유 때문이지…
얼굴도 못 생기고 스포츠, 컴퓨터, 노래…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난
정말 딱히 내세울 만한 개성하나 없지…
그래서 혹시 핸드폰 없는 것도 개성이 되지 않나 싶어서
어떻게든 남들과 뭐하나 다르고 싶은 맘
삐삐로 달래보지…
다섯번째 이유는 나의 얍쌉한 이유 때문이지…
삐삐는 "골라받는 재미"가 있지…
전화는 오면 받아야 하지만…
삐삐는 내가 취사.선택을 할 수 있지…
핸드폰은 항상 실시간으로 작동한다는 이점이 있지만
전화받기 곤란한 사람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아무와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일 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아야만 되는 심정이란…
그래서 난 삐삐를 애용하지…
너무 얍쌉한 이유다…너 너무 한다…하지만…
핸드폰을 사 놓고…전화받고 싶지않다고 꺼놨을 때
전화를 했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전화건 사람의 맘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차라리 삐삐가 낫다고 말하고 싶지…
그래도 음성은 남겨놨으니깐…
여섯번째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지…
빨리 핸드폰 사라는 그들이 술만 마시면
이용하는 "통곡의 벽"은 다름이 아닌 내 삐삐지…
술에 흠뻑 취해
헤어진 여자친구의 예전 삐삐인줄 착각하고
애절하게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남기는 친구…
‘고해소’로 착각하는 건지..
이쁜 애인 놔두고 딴여자 만난 이야길
정말 반성한다며 주절주절 떠드는 친구…
"그냥 비가 내리길래…"하면서
차분한 DJ같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음성을 남겨주는 친구…
"야…그냥 넌 삐삐로 남아있어라…
심심할 때…아니면 지나가다
전화기에 50원 남아있으면 전화할데라도 있어야 할거 아니야…"
하며 핸드폰을 사라고 종주먹을 대던 이들이 그렇게
다시 삐삐를 계속 그냥 놔두라고 말을 하지…
하하..그들 덕분에 나에겐 삐삐가 흉기가 되기도 하지…
그들이 여자친구들 데리고 나온 술자리에서
술 한잔 더하자는데 집에 가야한다고 할 때…
조금 내게 맘에 안드는 말(?)을 할 때…
"야 조심해…
내가 여기서 불면 모든게 끝장이야…
글쎄 며칠 전 내 삐삐에 있잖아… 씁…"
하면 다들 벌벌 떨지…
천하무적 삐삐가 있는데 무엇인들 두려우라…
핸드폰을 사지 않는 젤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 일곱번째 이유지…
마지막 이유는 그녀를 위한 이벤트 때문이지…
"설마…나에게도 언젠가는 ‘그녀’ 가 생기겠지…" 하며
핸드폰을 남겨두는 거지…
언젠가 새로 생길 연인을 위해
커플폰을 얘약해 두는 것도
그 인연을 기다리는 남다른 준비, 색다른 재미이지…
남들은 ‘그녈’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데…
핸드폰 요금쯤이야…
기본요금보다 많이 나왔다고
밤길에 빨간벽돌 던질지 모르지만 –+
밥 몇끼 굶으면 핸드폰 요금 정도야 낼 수 있지…
나도 언제 ‘사업'(?)이 바빠져 핸드폰들 사게 될까…?
핸드폰을 사게 된다면
마지막 이유와 상관이 있어 사게 됬으면..하는 심정…
누가 알아주려나…
인연은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온다더니…
아직도 맺어지지 않는 인연에 투덜거리면서도
난 오늘도
신문 한쪽면을 꽉 차지한
핸드폰 광고의 요금을 유심히 쳐다보지…
20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