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우연 <13>

우연 #13

민이: 동아리에서 후배하나가 석이에게 편지쓰는 걸 보았습니다. 호호 잘됐다.

후배에게 석이더러 다음에 나한테 편지보낼 때 그에 대해서 조금은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에게 편지를 써 볼까요? 날씨가 조금씩 추워집니다.

철이: 날씨가 춥습니다. 신일병녀석이 아무래도 날 감시하는거 같습니다. 뭘

째려봐? 수민이 누나하고 어떤 관계냐고 좀 진진하게 물어봅니다. 장래를 약속한

사이다. 장난치지 말고 사실을 말하랍니다. 자기가 소개시켜 줄 의향이 있답니다.

아서라. 제대할날이 언제가 될지 아직도 깜깜한 녀석이… 또 그러기도 싫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녀와 난 인연이 있을거 같습니다. 잊혀지지 않고, 잊을만 하면

내앞에 나타나고… 답장이나 쓸랍니다. 답장을 해야 할 편지가 많습니다. 오늘

무기명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떠올려 졌습니다.

민이: 석이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있네요. 요즘 펜팔편지

쓰느라 참 바쁘신 몸이라는군요. 뭐야? 조만간 낭패 당할 것 같다고 합니다. 뭘?

그가 쓴 편지의 내용이 뒤죽박죽이라는 군요. 자기생각엔 그가 편지지의 이름과

편지봉투의 이름을 다르게 해서 보낸것도 있다고 합니다. 제대 말년이 되면 다

그런다고 하는데… 석이가 그를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음 하는데 내 의사가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머 별꼴이야. 자기보다 그를 먼저 알았다는 걸 석이는

모르는가 봅니다. 생각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후배님… 그와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서로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는 내가 보내는 편지를

단지 펜팔편지처럼 받고나 있지 않나 걱정도 되네요.

철이: 내 밑으로 집합! 어라 내무반 전체가 다 모였어? 그러고 보니 내 위로

아무도 없네요.

이제 제대할 날이 두달 정도 남았습니다. 심심하네요. 날씨는 많이 춥습니다. 난

별 할일도 없어요.

왜 그런지 펜팔했던 애들이 하나 둘 연락을 끊었습니다. 내딴에는 잘 써서

보냈는데… 그래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편지는 계속 옵니다. 일곱통째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항상 나에게 그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녀가 이 편지를

보냈을까요? 무엇 때문에? 누군가 고참인 날 위해 수를 쓴거 같기도 하지만 내

맘은 그녀라 믿고 있습니다. 그럼 됐지요 뭐.

민이: 방학을 했군요. 벌써… 시간이 참 빨리도 갑니다. 무얼 남기고 가버리는지

시간은 그처럼 나를 횡하니 스쳐지나갑니다. 음반점 아저씨가 이제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송(song)을 내보내도 되지 않겠냐? 합니다. 그럼요. 설레이는 한주가

되겠습니다.

철이: 시간 진짜 안갑니다. 도대체 동지가 지났것만 해는 왜 이리 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라 부르는 날입니다.

그래서 애들이 전부 뭘 읽느라 바쁘군. 나한테 온 편지는 없냐?

없는데요.

신일병 너한테는?

있는데요.

혹시 수민씨한테서 온건 있냐?

없는데요.

너 언제부터 나한테 ~데요.라고 끝을 맺었느냐?

좀 됐는데요.

군발이처럼 해 쨔샤.

예! 시정하겠습니다.

민이: 우표값이 170원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전 몰랐었거든요. 그와 석이한테 보낸

카드에는 종전의 150원짜리 우표를 붙혔습니다. 혹시 못 받지나 않았나 걱정이

됩니다. 음반점은 크리스마스때가 대목이라 쉬지를 않네요. 흑흑 이 좋은날 오후

음반점안에 갇혀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실내에 퍼지는 상쾌한 음악이 그런 내

마음을 말끔히 씻어 줍니다.

철이: 길고긴 일월이 갔습니다. 새해에는 사회에서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갈

겁니다. 민간인! 군발이의 우상. 민간인… 바로 내가 민간인이 된다는거

아닙니까. 푸하하. 신일병 저녀석 상병휴가 연기 됐습니다.

신상병 안됐네…그려. 다른건 다 연기되어도 제대날짜는 연기가 되지 않습니다.

일주일만 버티자. 말년휴가다.

민이: 요즘 그에게 좀 무심 했습니다. 한동안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카드까지

합쳐도 여덟번 밖에는 보내지 않았지요. 그는 나에게 아홉번을 보냈는데 말입니다.

복학준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이번달까지는 내가 책임지기로 했고

못한 공부도 해야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오늘은 그에게 편지를 써야

겠습니다. 그가 곧 제대를 할것 같네요. 호호 저도 군복무기간이 26개월인걸

알거든요.

오늘 편지지 마지막에 내이름을 적었습니다.

저 수민인데요. 전 줄 알았어요? 만나게 되면 서로 아는척 하기로 해요. 뭐

이런식으로 내 이름을 밝혔습니다. 그처럼 학번하고 과이름은 밝힐 필요가 없겠죠.

그가 다 알고 있는거니까 말이에요.

철이: 하하. 나 먼저 나갔다 오마. 신상병 내 돌아오면 봐.

짧은 휴가입니다만 그래도 날아갈것 같습니다. 엄마가 제대할거면서 왜 나왔냐고

합니다. 너무 하십니다.

학교를 갔었지만 혹시나 그녀를 볼까하고 간것은 아닙니다. 복학신청을 해야죠. 전

남들처럼 군복무 때문에 한학기이상씩 놀고 그러지는 않겠습니다. 빨리 졸업하고

놀겠습니다.

민이: 어머머. 이게 누구니? 음반점에 있었는데 참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석이의 얼굴이었습니다.

너 휴가 나왔니?

예. 동아리방 갔더니 수민이 누나는 여기 있다고 가르쳐 주더군요.

그래. 이번달까지만…

이거 정말 누나가 보낸거에요?

석이가 나한테 보여준것은 그에게 보낸 아홉번째 편지였습니다.

이걸 왜 네가?

성병장님 제대했어요. 저번주에… 편지는 병장님 제대하는날 도착했구요.

미안해요. 다른 고참이 뜯어 봤어요. 하하. 내가 전해주어도 되지만 직접

전해주세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