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15
철이: 오전의 깊은 여운은 누군가의 흔들어 깨움에 여리고 흐린 풍경들에서
선명함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누구여?” 과 친굽니다. 너 복학했냐고 묻는군요.
아직 학기 시작도 안했는데 복학은… 복학신청만 했다고 했습니다. 반갑다고
합니다. 자기도 이제 복학을 할거라는군요. 그말 할려고 잠을 깨웠단 말여?
친했던 친구니까 그럴수도 있지요.
커피나 한잔 하며 이야기 좀 하자고 합니다. 뭐 싫을거 없지요. 쿠쿠. 이게
누구신가?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금방 누군줄 알겠습니다. 내가 자던 모습도
그녀에게 이런 귀여운 모습으로 비추어 졌을까요? 아니겠지요. 그녀는 두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머리를 고이 숙여 자고 있습니다. 나처럼 그냥 머리를 박고
자지는 않습니다. 그리웠던 그녀의 모습. 이모습을 조금더 보고 싶지만 친구가
불러냅니다. 나중에 봐요. 다시 도서관을 들어올땐 긴장이 좀 되겠습니다.
우이씨. 아는 놈들 둘을 더 만났습니다. 놔란 말이여. 누구를 봐야 한단 말이여.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구를 치고, 한 네시간정도 쳤나요. 점심을 먹고, 남자들끼리 게이소리 들을 일
있냐? 커피 도 갔습니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을까요. 들어가야 해. 술한잔
하잡니다. 크윽…뭐? 또 당구쳐? 죽빵한번 치잡니다. 그래 오늘 당구장에서
죽자.
도서관에 돌아왔을때 시계바늘은 10시를 훨씬 넘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텅빈
그녀의 열람석, 그리고 초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가방. 이게 친구들에게
자기는 인기작가라고 구라치고 다니는 이모씨가 독자들에게 현혹되어 날 그녀와
못만나게 할려고 만든 결과라는걸 난 모른채 가방을 챙겨야 했습니다. 뭐
챙길것도 없네요. 책한권 내어놓고 펴지도 안했으니 말입니다. 우이씨. 누가
커피를 왕창 마셨나? 또 맹물이여? 밤하늘이 뿌옇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까맣습니다.
민이: 희미한 열람석의 칸막이가 뚜렷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옆을 쳐다 보았읍니다. 썰렁. 그가 자리를 비웠군요. 내 잠든
모습을 보고 그는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가 돌아와
앉겠지요. 내 가방 한편에선 도장찍힌 편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니!” 동아리 후배군요. 무슨 일일까요? 자기도 후배가 생겼다며 소개를
시켜준다고 합니다. 입학도 안했는데 좀 늙어보이는 남자하나와 여우같은
여자하나가 벌써 우리 동아릴 가입했답니다. 오티때 친해졌다는군요. 결국은
이거였군요. 나보고 점심사달라는거였습니다. 기집애! 약아가지고 인심은 자기가
배풀고 나는 돈을 썼습니다. 그래 학기 시작하면 보자꾸나. 조금 떨리는 맘으로
도서관을 들어 갔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그가 앉아 있을것만 같습니다.
없군요.
저녁을 먹고 들어와도 그는 없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차라리 가방도 들고
가시지 그랬어요. 그가 또 나 때문에 밖에서 머뭇거리지나 않고 있을까요? 오늘
열람실을 자주 들락거리느라 자판기 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속이 좀
매스껍네요. 그는 어디를 갔을까요? 할수 없이 아홉시를 조금 넘겨 가방을 챙겨
나왔습니다.
철이: 그녀가 준 테이프를 듣고 있습니다. 집안에 아무도 없고 홀로 음악을 조금
크게 틀어놓고 여유를 느끼고 있지요. 그녀가 나에게 이 테이프를 준 의미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알고 있는건 확실합니다. 거절을 당하고 난뒤
난 내자신이 부끄러워 내가 썼던 편지를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일이 미소짓게 하며 떠올려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준 한장의 편지. 그걸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는 어렸을때죠. 충분히 마음이 바뀔수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받았던 편지는 분명 서울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자가 너무나 닮았습니다. 웃음이 낄낄될정도로
나왔습니다. 으이씨. 누구여?
우리형이 뭐가 좋냐며 뒷통수를 쳤습니다. 노크 좀 해라. 또 쳤습니다.
노크라네요. 음악소리좀 죽이라고 합니다.
편지지를 보더니 아직도 그짓이냐며 쯧쯧거립니다. 아직 여자친구하나 없는게
되게 뻑뻑거리네요.
노래가 좋다며 테프를 뺏어갈려고 합니다. 그건 안되지요. 절대로 말입니다.
돌려줘야할 테프라 했는데 결국은 뺏겼습니다. 나쁜 형아.
민이: 오늘은 개학날입니다. 입학식도 있네요. 95학번 새내기들이 귀엽군요.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방으로 갔더니 이미 본적이 있는 남자후배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촌스럽고 좀 늙어보이긴 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충청도 녀석이지요. 가자 내 점심 사줄께. 학생식당이지만 말이야. 후배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하 녀석이 하숙을 하는데 자전거로 통학을 한다네요. 쑥스러운듯
태워줄까요? 그럽니다. 뒷자리에 탔습니다. 치마를 입고와 한쪽으로 탈 수 밖에
없네요. 야 내가 너보다 네살이나 많아. 떨긴 왜 떠니. 내가 녀석의 허리를 잡자
참 많이도 떠는군요. 사대앞은 내리막길입니다.
얘 좀 천천히 가.
브레이크가 좀 맛이 갔어요.
아항 그럼 나 내릴래.
빠른 속도로 누군가 스쳐지나갔습니다. 사대앞에서 누군가 놀란 모습으로 나를
쳐다봤습니다. 그군요. 호호. 나도 자전거 탔습니다. 담에 마주칠일 있겠죠.
‘끼이익!’ 무슨 소릴까요? 그가 뒤에 있는데 다시 뒤돌아보기가 좀 그렇네요.
철이: 오늘은 개학날이지요. 헤헤. 나는 과감히 사대에서 듣는 교양과목을
신청했습니다. 잘했습니까? 그녀를 한번쯤은 마주칠 수 있겠지요? 뭘 듣냐구요?
초급 일본어요. 그 수업이 월요일날 들었습니다. 사대안 일교과 학생회실이
있는곳에서 멀지 않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휴강이라고
말하는 조교놈이 눈에 익은 얼굴입니다. 어디서 본 놈이지? 덩치가 산만한게
무식하게 생겼습니다.
수업을 끝마치고 사대를 빠져 나왔지만 그녀를 만날수는 없었습니다. 괜히 마음만
설레었지요. 뭔가 쌩 내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아! 나는 어쩌라고 어떤 촌스러운
남학생이 모는 자전거뒷자리에 그의 허리까지 잡고 말입니다. 그녀가 타고
있었습니다. 섭합니다. 수민씨.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건 또 모야?
끼이익 소리를 한바탕 내고는 자전거가 나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들고 있던
가방만 저만치 날아가고 저는 별로 아픈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자전거 한대에 세명이나 타고 있었습니다. 어쭈 여자까지 끼였어?
다쳤냐고 물어보는군요. 그럼 받쳤는데 안다쳤겠냐? 에구 불쌍한 내가방. 여자가
예쁘서 참는다. 여학생이 낯이 익네요. 앞으로 조심해요.
민이: 학생식당에 예전에 그와 교양같이 듣던 친구가 “기집애야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했냐”고 따집니다. 나 잡을려고 후배자전거 얻어 탔다가 큰일 날뻔
했다는군요. 낯이 익은 누군가를 치일뻔 했답니다. 그래? 그럼 네가 밥사면
되겠다.고 말했다가 그녀의 불타는 눈초리에 내가 타버리는줄 알았습니다.
이쪽은 누구세요?
새내기 후배야.
안녕하세요. 95학번 현철이라고 합니다.
되게 늙어보인다. 몇년생이에요?
얘 말 놔.
늙어보여서…
방년 용띠 76년생인디유.
25살은 되어 보이는데…
제 엄마께서 저를 보름정도 더 배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늙어보이긴 한다. 삶이 너를 포기하게 만들지라도 누굴 원망하지 말아라.
에그. 자세히 보니 군대까지 갔다온 그보다 더 늙어보입니다.
철이: 공강시간이 되니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예비역 몇명이서 족구를 하길래
저도 끼였지요. 공포의 강스파이크다. 날랐습니다. 그리고 찼습니다. 홈런. 참
멀리도 날라가네요. 얼라리요? 공이 떨어집니다. 절묘하네요. 걸어오던 여학생의
머리한쪽을 맞히더니 옆에서 같이 걷던 여학생의 머리도 맞추어 버립니다. 너무
우연입니까?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알고봤더니 어제 낯이 익던 여학생은
그녀의 친구였군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구요? 그녀의 옆에 있었으니까 말이죠.
내가 찬공은 공대쪽으로 오던 그녀와 그녀의 친구머리를 맞추었습니다. 잘됐다.
그녀는 어떤놈의 뒷자리에 애인인양 타고 갔겠다. 그녀의 친구가 탄 자전거는 내
가방을 아프게 했겠다. 나 나쁜놈입니까? 머리를 만지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뛰어볼까요. 내친구들은 미안해하며 그녀들
한테로 갑니다. 싹싹 빌어라. 나는 도망간다. 공대건물안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다시 나오다 그녀를 만나 흠 놀랐지만 내가 찬줄은 모를겁니다. 그둘은
얘기하고 오다가 맞았으니까 말이죠.
미안해요. 그녀가 왜 날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지나쳐 가는걸까요? 그리고
공대는 왜 왔을까요?
민이: 과감히 공대에서 듣는 교양을 한과목 신청을 했습니다. 나혼자 가기가
그래서 친구를 꼬셨습니다. 난 컴퓨터를 왜 486이니 펜티엄이니 그러는 줄 아직
모릅니다. 친구는 모니터만 크면 다 좋은 컴퓨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구요? 제가 들을 과목이 ‘컴퓨터의 이해’거든요. 친구하고 나하고
공대쪽으로 걸었습니다.
오늘이 그 교양수업이 있는날입니다. 누가 더 컴맹인거 때문에 얘기를 막
했었지요. 아무래도 하늘에서 노한거 같습니다. 컴퓨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서로 잘난척 한다고 말입니다. 어디선가 축구공이 날라와 내 머리를
맞혔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공을 꼭 헤딩이나 한것처럼 재잘거리던 친구의
얼굴도 맞추어 버렸지요.
족구를 했던 학생들 몇명이 미안해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순간 웃음이
났습니다. 솔직히 축구공 날라와 맞은거 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왜 웃음이
나왔냐 하면요. 우리에게 다가온 한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찬 개철이 녀석은 어딜 간거야?” 호호. 그가 찬공에 제가 맞은거였군요.
그렇죠? 도망간다고 안잡힐리 없죠. 그는 공대 안으로 도망을 갔었나 봅니다.
내가 갔겠지 생각을 하고 나오다 저하고 딱 마주쳤거든요. 친구는 왜 웃냐고
그럽니다. 머쓱해 하는 그의 모습이 귀엽네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