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우연 <9>

우연 #9

철이: 내무반장이 나보고 새로온 소대장한테 인사갔다 오랍니다.

        씨… 내가 짬밥이 있지. 그래도 할수없습니다.

        나보다 3개월이나 짬밥없는 놈한테 경례부치기가 서럽습니다.

        자전거타는 친구가 얼마안있어 입대를 한다는군요.

        편지를 보니 오늘이 입대일이군요.

        이렇게 더운날 연병장 돌아보거라 하하하. 그녀의 모습.

        그녀는 이 여름 어떤 추억을 남기며 보내고 있을까요?

민이: 뒤늦게 가입한 3수생 신입생이 선배와 아는 사이였습니다.  

        비리입니다.

       우리기수와 맞먹어라니요. 어떻게 그럴 수가…

       방학이라 그럴까요? 그의 친구의 모습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와의 인연 정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불안하기만 합니다.

철이: 새까만 4월군번들도 애인이 면회를 오고 하는데…

        부모님 한번 오신 것 말고는 아직 면회조차 없습니다.

        서럽습니다. 병장들 사물함안에는 자기 애인들사진도

        붙어 있습니다. 고참들 연애편지나 대신 써주어야 하는 내 신세여…

민이: 날씨가 많이도 덥군요. 그는 잘지내고 있을까요?

        점점 그를 생각하는 시간들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잊혀져 가는군요.

철이: 야. 비다. 비 한번 시원하게 오는구나.

        이런 날은 딱 자기 좋죠. 하하. 너무 옵니다.

        3일만에 햇빛을 보았습니다. 대민 지원을 나갔습니다.

        우유한잔. 맥주한병.그리고 곰보빵.

        그거 받아먹고 5만원짜리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허리가 빠질려고 합니다.

민이: 동아리 엠티날짜를 잘못 잡았습니다.

        비가 너무 옵니다. 이틀 내내 민박집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이야기들로 즐거웠습니다.

        돌아오는 날 여기저기 벼가 물에 잠겨 쓰러져 있었습니다.

        풍년이 들어야 하는데… 다시 모습을 빛내고 있는 저 햇살을 받고

        기분 좋게 자라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저걸 누가 다 세울까요?

철이: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임진강 건너 산들은 벌써 울긋불긋합니다.

        친구녀석은 어디로 배치를 받았을까?

        학교는 곧 개학을 하겠군요.

        하하 작년 이맘때는 한 여학생으로 인해 맘을 많이도 떨었지요.

        그 여학생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요?

        별로 시간이 많이 흐른건 아니지만 벌써 그녀에게

        한 여학생이라고밖에는 말을 못하겠군요.

        공유한 기억이 얼마나 될까요.

        그 기억의 시간은 이곳에서 생활한 시간에 비해

        너무나 옅기에 이제 지워져 갑니다.

민이: 날씨가 선선해지니 잊혀져 가던 그의 기억이 뚜렷해지는군요.

        별로 공유했던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의 가을느낌이

        가을이 다가옴에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짝사랑은 영원히 눈감을 때까지 미소짓게 한다더니 맞나봅니다.

        선배누나라고 부르는 후배녀석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 맘은 제가 잘 알지요.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도록 내가 힘을 써주어야 겠습니다.

철이: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찬바람마저 붑니다.

        하늘높은 계절에

        찬바람이 불면

        미지의 소녀와

        그 바람속에 흩어지는 낙엽의 울음을

        둘이서 같이 듣고 싶다.

        아직 사춘기일까요.

        아니면 이곳이 그런 느낌을 주는 벽지라 그럴까요?

        내 마음이 지금 울립니다.

        그녀는 이제 미지의 소녀가 되어 그려지지 못하고 존재의

        기억만으로 아련히 떠오릅니다.

민이: 오늘 기분좋은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낙엽들 그렇게 기분좋게 땅위에 내려 앉습니다.

        호호.. 몇개주워 사전에 꽂았습니다.

        아무래도 전 가을여자인가 봅니다.

        중간고사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후 작년엔 이맘때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던 강의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공과목에 지쳐 그런 기분은 들지 않네요.

철이: 하하. 고참님 감사합니다.

        저녁에 병장 두 분이서 빵과 우유를 구해다

        생일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내 생일인 줄은 알았을까요?

        아침에 미역국도 못먹고 그냥 지나치나 했는데…

        그래도 우리 고참님들 정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후임병을 시켜 축하노래도 부르게 해주시고…

        나도 병장이 되면 저렇게 해야겠습니다.

민이: 엄마는… 누구 생일도 아닌데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놓았습니다.

        그래도 뭐 시험도 없는데 잘 먹겠습니다.

        아침은 늦은 시월답게 그의 하늘을 높게 하고

        고고한척 파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일본비자를 끊어야 하는데…

철이: 11월의 비는 이별이라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시린 빗소리에 서럽게 단풍들은 모두들 떨어졌습니다.

        제 휴가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난 꼭 휴가날짜가 대학들 시험 볼 때입니까?

        총이라도 들고 나가 시험 보는 강의실 점령하고 하나하나

        불러내어 축가나 부르라고 할까요?

민이: 시간 빨리 갑니다.

        대학 이학년이라는 이름도 저물고 있습니다.

        곧 기말고사입니다. 오늘 그가 오랫만에 떠올려졌습니다.

        그가 이맘때 이름을 밝히고 만나자고 했었죠.

        하하. 그때 만났다면 전 지금 그에게 위문편지를 쓸려고

        가슴저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철이: 조금 지겹습니다. 하하 많이 지겹습니다. 빨리 와라.

        얼마나 지겨웠으면 고참들 다방레지더러 면회오라고

        돈부쳤다가 걸려 두명 영창갔습니다.

        그래도 군기가 빠지면 안되지요. 이 나라 파수병인데…

민이:조금 우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끼는 후배,

       나보고 꼭 선배누나라고 부르는 그녀석이 군대를 간다고 합니다.

       시험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가버린다는군요. 아쉽습니다.

       뭐하나 사주어야 할텐데…

       다음에 편지나 써달라고 합니다. 그래 내 특별히 애인처럼 써주께….

       그는 십이월 둘째주가 시작하자 마자 입대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난 기말고사를 마쳤습니다.

철이: 야호. 드디어 짝대기 세갭니다. 휴가를 나갑니다. ‘성상병’ 이응자

        돌림이라 발음하기 힘들지만 참 듣기 좋지 않습니까?

        집에 들렀다가 학교를 갔더니 썰렁합니다.

        내 생각데로라면 시험 때문에 북적되야 하는데…

        하하 작년보다일주일 빨리 시험이 끝이 났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나 나온다고 편지라도 보내놓고

        오는건데 그랬습니다. 아는 애들도 없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군대로 사라져 버렸군요.

        사대앞 벤취에서 자판기커피에 잠시간의 여유를 가져보았습니다.

       조금 춥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적었습니다.

       저 건물안에 그녀가 있을까요?

       돌아가렵니다.

       버스정류장앞.. 하하 꽃집옆에 레코드점이 생겼습니다.

       내가 조그맣게 바라던 일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없습니다.

       군복입고 꽃을 사기는 그렇지만 장미 몇 송이를 샀습니다.

민이: 학교가 한산합니다. 전 지금 휴학원서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그럴 일이   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전 한국에 없을 겁니다.

        사대를 나오다가 벤치에 앉아 보았습니다.

        누군가 앉았다 간 모양입니다. 벤치바닥이 그렇게 차지가 않습니다.

        얼마있으면 이곳과도 당분간 이별이겠군요.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레코드 점에서 음반을 하나 샀습니다.

        밖으로 들려오던 음악이 너무 좋았거든요.

철이: 이번휴가도 별 의미없이 보내 버렸습니다.

         이번엔 그녀의 잠시간의 모습도 느끼지 못하고 부대복귀를

         해야 하는군요. 이번에 들어가면 8개월입니다.

         막막합니다.

민이: 후배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내일 자대로 배치 받는다는 군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군 생활이 시작된답니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겠다. 배치받고 다시 편지를 보낸다는군요.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철이: 하하 후임병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우리학교후배이군요.

        하하 내 특별히  넌 잘봐주마. 이래뵈도 내가 실세야.

        나중에 그 녀석만 따로 불렀습니다.

        무슨 과냐?

        일교과입니다.

        엥? 너 혹시 구이학번에 소수민이라고 아냐?

        예 압니다. 알어? 어떤사이냐?

        애인사입니다.

        뭐? 박어!!

        아닙니다. 그냥 친한 선배누나입니다.

        원위치! 진짜?

        예 저한테 애인처럼 편지보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동아리활동도 같이 합니다.

        하하 이런일이… 그녀와는 뭔가 인연의 끈이

        매듭지어지지는 않지만 끊어지지는 않나 봅니다.

        그래 알았다.

        오늘따라 그녀의 모습이 내 머리속에 잘 그려지는건

        무엇 때문일까요?

        용기를 내어 나도 오랜만에 그녀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후임병녀석이 그녀한테 보내는 편지봉투에다

       같이 넣었습니다. 그녀가 나한테 답장을 보내줄까요?

민이: 드디어 오늘 일본으로 떠납니다.

        바빠서 학교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후배 녀석한테는 미안하군요.

        나중에 학교로 편지보내어 주소를 알게되면 일본서도

        보낼 수 있는거니까.

        내가 태어난 내 나라여. 반년동안 안녕.

철이: 야! 편지 왜 안오는거야?

        꼭 보낸다고 했습니다.

        혹시 너 구라친거 아니야?

        아닙니다.

        제가 누구와 닮은거 같다며 저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그래? 너 연예인 얼굴하고는 거리가 먼데?

        그래도 사회에 있을때는 잘 나갔습니다.

        박어! 난 사회에 있을때 잘 나갔던 놈들을 경멸해…

        원위치. 내가 네가 보낸 편지에 내 편지도 같이

        넣었다고 불만이지?

        아닙니다.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이는 누군가?

        예. 이쁘고 착한 여자이며 성상병님의 애인이십니다.

        그래 군발이는 그렇게 기가 들어있어야 하는거야 임마.

        근데 진짜 편지는 왜 안 오는겁니까.

        제가 괜한짓 했습니까?

민이: 일본에서 생활들은 힘이 듭니다.

        말은 알아듣겠는데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컵라면 하나에 500엔. 우와 한국돈으로 4000원입니다.

        물가가 정말 높았습니다.

        선배오빠들이 뽀르노테잎좀 사오라고 했는데

        그런 것은 눈에 잘 띠지 않습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동아리방에다 편지를 썼습니다.

철이: 편지보낸지 석달만에 신이병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신이병은 제 후배놈이지요. 편지봉투가 이상합니다.

        야 이편지봉투는 테두리가 알록달록하냐?

       해외에서 온 편지라 그렇습니다.

       누구한테 온건가? 왜 일어로 되어 있냐. 기분나쁘게.

       수민이 누나한테서 온겁니다.

       정말? 근데 왜 해외에서 날라왔냐?

       읽어보겠습니다.

       안녕 미안해 빨리 편지보내지 못해서 네 편지는

       받아보지 못했어.

       네 부대 주소는 동아리에서 보내준 편지에서 알게되었어.

      그만. 10분간 박고난 다음 다시 읽어.

      흑흑 그녀가 그럼 제 편지는 못봤겠군요.

      참..설레이며 쓴건데…

      원위치 계속 읽는다. 실시!

      여기는 일본이야. 6개월정도 연수를 떠났어.

      너도 힘내고 군생활 잘해…

      그녀가 일본으로 이사를 간건 아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소수민이는 누군가?

      옙! 위대한 성상병님의 애인이십니다.

      병장들이 지랄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 조금은 개기는 짬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 애인의 편지에서 내이름은 한자도 거론되지 않는가?

      시정하겠습니다!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지금 바로 사온다. 실시.

      …

     국제 편지봉투는 안파는데요.

     흑흑… 그녀의 인연의 실은 끊어지지는 않으면서

     왜이리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감히 이 짝사랑을 포기해 버릴까요?

     그래도 편지는 압수했습니다.

민이: 여기서 생활도 육개월이 다되어 갑니다.

        곧 귀국할겁니다.

        배운것도 많고 적극성도 늘었습니다.

        재일교포 자녀들 국어공부도 시켜주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해서 돈도 좀 벌었습니다.

        호호 한국도착하자 마자 또 외국 나갈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이나 갔다와야 겠습니다.

철이: 신이병. 아니지 신일병이 휴가를 나갔습니다.

        배 아픕니다. 녀석이 그녀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 갖다 준다고 합니다. 그녀석 돌아올 날이 기다려집니다.

        근데 녀석이 짬밥이 좀 된다고 요즘 저한테 조금씩 개깁니다.

        어떡할까요?

민이: 호호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반가워 하는군요.

        일학년때 교양을 같이 들었던 친구와 배낭여행갈

        계획을 잡았습니다.

        여자둘이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호텔팩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귀여운 현석이가…

        참 현석이가 제가 잘 봐준 후배이름입니다.

        그녀석이 휴가를 나왔다고 합니다.

        한번 봐야지요. 얼굴이 많이 까매졌네요.

        그리고 좀 어른스러워도 보입니다.

        근데 녀석이 나보고 대뜸 성개철이를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혹시 전산과 성계철이를 말함이냐고 되물었지요.

        호호 맞다는군요. 자기 내무반 고참이라고 합니다. 정말?

        세상좁구나… 그와는 뭔가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녀석이 먼저 물어보았는데 제가 더 물었지요.

        내가 그의 애인이라는군요. 호호 그리고?

        재밌고 정은 많은데 자기를 너무 못살게 군다고 합니다.

        단지 날 안다는 죄로… 호호 또?

        자기편지에 그의 편지도 같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정말…?

        동아리방에서 후배의 편지는 봤지만

        그의 편지는 보지 못했었는데…

        그리고 녀석이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니까.

        하나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다이어리에서 내가 일본 있을때 찍은 사진을 하나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었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지요.

        정말 아는사이에요?

        조금.

        애인사이는 아니죠?

        그건 노코멘트.

        참 많이 잊고 있었는데 그는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후배가 그의 얘기를 했을때 그가 어떻게 사는지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거든요.

        여행을 마치고 오면 편지를 보내야겠습니다.

        위문편지를 말이죠.

        그의 모습이 이년전 처음 그를 보았을때처럼 설레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