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병가를 마무리하며…

 

아팠다. 17박 18일을  입원했고 총 한 달간의 병가를 보냈다.

인생은 항해와 같은 거라 언제든 갑자기 예상치 못한 거센 파도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필이면 때마침 창궐한 메르스와 겹쳐서 해프닝도 많았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는데 6개월만 지나도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을 알고 당시의 느낌과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겼었다.

publish 할까말까 고민하다 이제서야 publish 한다.

(글이 너무 감상적이거나 쓸데없는 잡념이 많아 나중에 보고 올리자 했는데 벌써 훌쩍 10주가 지났네…)

‘기승’ … 만 있는 글이 되어 버려 몇 번이나 곱씹다가 그래도 기록으로라도 꼭 남기겠다는 신념으로 마침표를 찍어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Lessons & Learned 는 인생을 바라보는 변화된 가치관에 대한 재확인이다.

아무리 건강관리 열심히 하고 2년에 한 번 감기걸릴까 말까한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도

이렇게 맥없이 세균 침투 한 방에 망가지고 비참해 질 수 있는 게 인생…(?)

 

 

왜 지금 하고 싶은 일들과 즐거움을 참아야 하는가…?

미래에 보장되지 않은 즐거움을 위한 투자는 줄여 가겠다.  (밑 줄 긋고 Bold 쫙!)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 ‘, ‘늙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비해야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생각들 때문에…

[인내와 끈기, 절제]라는 과거 전통적인 미덕에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겠다.

크기가 작더라도 잠깐이라도 현재의 보장된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함에 더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벗어나려고 마구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겠다.

 

 

그리고 상세한 일련의 사건들과 상념들…..

——————————————————————————————-

 

6/15 (일)  18:40 8박 9일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서울 도착

 

6/16 (화) 08:20 몸에서 열감이 느껴지는데 갑자기 불안하다. 사무실 한 켠 응급함에 가서 체온을 재본다.

IMG_1635

 

출근 시간 30분 전이고 바로 퇴근하겠다고 보스에게 문자…

그리고 바로 동네 보건소로 간다.

 

text

 

보건소의 풍경은 이랬다.

장엄하고 비장했다. 두둥….

IMG_1638

 

검사 전에 문진을 하는데…

‘최근 몇 일 내에 아랍권이나 삼성병원은 간적 있는가.. ‘ 기타 등등을 묻더니 해당 사항이 없으니 검사는 진행하기 곤란하다고 한다. ㅎㅎ핫 언론에서 한 얘기가 괜한 얘기가 아니구나…

지금 물 샐틈 없이 막아도 모자랄판에… ‘화가 났지만 침착해야돼…’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열이 너무 나서 괴로운 나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제가 그저께 미국에서 귀국했는데요… 만일 메르스라면 큰 외교적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미쳤어…

그랬더니 바로 검사가 진행된다.

다음 날 바로 결과가 나온다고…

간단하게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서 가래침을 뱉어서 받아오면 끝.

집에서 자가 격리 조치를 하라하고 가족사항을 묻더니 만일 아기가 피신해 있을 곳이 없다면 조용히 모텔에 들어가서 있으라고 한다.

그래서 동네에 모텔로 직행… 처방 받은 해열제 먹고 휴식을 취한다.

 

 

6/16 (수) 17:30 해열제도 먹고 푹 쉬고 있는데 있는데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래서 메르스대책본부 등에 가검사결과라도 나온게 없는지 확인 전화를 계속 하고

이상 없다는 문자를 받는다. 물론, 조르고 졸라서…

IMG_2133

 

 

그렇게 받은 문자를 가지고 동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그냥 감기 몸살인거 같다고…

항생제가 든 작은 링겔주사를 맞는다.

IMG_2131

 

수액을 맞자마자 열이 뚝떨어지고 이제 살 거 같다.

그 밤은 그렇게 잘 보냈다. 달콤하게…

 

 

6/17 (수) 06:00 마치 영화처럼 새벽 6시부터 다시 시작되는 고열..

이제 정말 겁이 난다.

내가 뭐 잘 못한게 있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오전 9시 메르스 대책 본부에 다시 전화를 걸어 검사 결과 확진 문자를 달라했다.

확진 결과를 보니 조금은 안심…

IMG_2134

 

회사에 확진 결과를 전송하고

다시 동네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맏고 수액을 맞는다.

그랬더니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지는 열… 휴….

 

 

6/17 (수) 16:40 하지만…또 다시 고열이 시작된다. 또!!

동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얘기하니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야할 거 같다고…

패혈증도 의심된단다. 쿵!!!

그래서 큰 병원으로 향한다.

 

 

6/17 (수) 18:10 병원 접수를 마무리하고 식염수 수액을 계속 맞고 있는데 열은 떨어지지 않는다.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진행했다.

1시간 정도 후에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염증 수치 백혈구 수치가 엄청 높은 걸 보니 몸안에 염증이 있는 건 확실한데 부위와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흉부, 복부 CT 촬영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30분 후 의사가 급하게 불러서 가보니  ‘간농양’이란다.

술 많이 먹은 노인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복부는 아프지 않는지 평소 술은 얼마나 마시는지 음주 습관을 묻는다.

‘일주일에 1번 정도?’ 라는 답변을 받은 의사는 갸우뚱하며 일단 응급실 입원 처방을 내린다.

그리고 팔, 다리 2곳, 총 3곳에서 다량의 채혈…

 

조금 무서웠다.

몸안에 침투한 세균에 대한 배양 검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그 균에 맞는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한다고…

 

 

6/17 (수) 23:00 운 좋게 일반 병실에 자리가 나왔고 바로 이동을 했는데 고열이 심해지고 오한까지 온다.

이제 열은 40도까지 오르고… 지옥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길고 긴 밤을 잠 한숨 못자고 보냈다.

휴….

 

6/18 (수) 08:00 상태가 위중해 시술을 바로 잡았다고 간호사가 안심하란다.

그리고 곧 인턴이 시술 동의서를 받으러 왔는데 시술 방법이 결정이 아직 안 됐다고 한다.

농양 부위에 관을 꽂고 천천히 배액 시킬 지 아니면 특수 기구를 꽂고 한 번에 쭉 뽑아낼지…

고열로 혼수상태인 난 ‘이게 말이 되냐… 시술 2시간 전인데 시술방법도 결정이 안 됐고… 게다가 그런 상태에서 동의서를 받으러 오는게 말이 되냐고’ 난리를 친다.

‘머리 속에서는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 하면서 통제가 안 되는 나의 몸을 느끼는 상황…

억울하고 슬픈 느낌…

억제되지 않는 분노에 스스로 당황하고 있는 나를 한 걸음 떨어져서 마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을 보내고 어쩔 수 없이 크게 한 숨 쉬며 시술 동의서에 싸인…

병원에서는 환자가 약자…

 

 

6/18 (수) 10:30 다시 한 번 CT 촬영을 다시하고 바로 시술실로…

시술은 간단했다. 몸에 구멍을 만들고 염증 부위에 관 꽂기…

시술이 끝나고나서 부터는 횡경막 부근에 꽂힌 관 때문에 아파서 크게 숨도 잘 쉬지 못 한다.

 

그렇게 시작된 17박의 병원 생활…

IMG_1670

 

 

하루에 2번씩 맞는 항생제 주사가 너무 독해서 하루, 이틀이면 혈관이 부어서 계속 자리를 옮겨 꽂아야 했고

아래 보이는 것처럼 마약 중독자의 팔 같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는 혈관들이 숨어서 주사 전문 간호사들을 불러서 맞아야 하는 상황들까지 발생…

그 자그마한 바늘들이 몸에 꽂힐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별 것도 아닌 이 작은 것들이 나를 이다지도 고통스럽게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자꾸 초라해 졌다.

IMG_1677

 

 

숨을 크게 쉬지 못하는 답답함과 통증 때문에 진통제 처방도 받았다.

두둥…!!! 마약류… -_-

IMG_1730

 

 

원인이 궁금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나오지도 않았다. 모든 간수치도 정상, 염증 수치, 백혈구 수치를 제외하고는 너무 건강했다.

교수님 왈 가끔 이,삼십대 젊은이들도 이렇게 온단다. 과로에 세균 감염되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왜 나만? 왜 나일까…?

 

일년에 한 번 정도 감기 걸릴까, 말까한데…

아무리 건강에 유의해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과

왜 나만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IMG_1740

 

무기력함과 박탈감이 계속 몰려왔다.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큰 병을 만난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냥 마음 편히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을 가져보자 생각하고

한 번 인생이라는 커다란 항해를 바라보자라고 생각했다.

난 지금 잠시 작은 풍랑을 만난 거라고…

 

 

차차 시간이 흐르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줬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열에 괴로워하며 죽음의 문턱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걸 느꼈을  때…

그리고 가끔씩 갑자기 병동 내에 울려 퍼지는 코드블루 방송을 들을 때…

내가 느낀 감정들과 절박함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

언제든 동전은 쉽게 뒤집힐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에 조금 더 충실하고

내 주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것…

 

 

7/3 (금) 12:00 퇴원…

 

집에서 남은 일주일의 병가를 보내며

내 주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것들에 대해 종이에 차근차근 쓰며 정리를 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 졌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니 기분도 훨씬 나아졌다.

 

모든게 다 이렇듯 내 마음 먹기에 달린건데…

 

살면서 어느 순간이든 갑자기 불행이 들이닥칠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삶을 휘청거리게 할 수 있는지

불행에 대처하는 마음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시 나에게 어떤 불행이 닥친다면 그 때는 더 빨리 담담하게 그 불행을 받아 들이겠다.

고민하고 슬퍼하고 원망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고 더 큰 수렁에 빠지게 된다.

받아들이는 순간부터가 첫걸음이다.

 

벗어나려고 마구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는 걸,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라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다.

 

뭐 별것도 아닌 걸로… 뭐 이렇게 거창하게까지…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손톱 밑 작은 가시가 가장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

 

누가 그랬듯이 깨달음은 찰나의 순간에 얻는 것 아닌가 싶다.

모든 것들이 마음가짐만으로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꼭 기억하고 싶다.

—————————————————————-